대중문화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면서 전통적인 문화영역의 경계도 차츰
허물어지고 있다.

문자.그림뿐만 아니라 음향과 동화상이 들어있는 멀티미디어 텍스트의
등장등으로 장르간 구분이 유동적으로 바뀌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문화 전반에 대한 흐름을 짚어보고 다양한 담론들을
한 데 모으는 작업은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녹색 만들기"는 새롭게 제기되는 다양한 관점과 목소리들이 합류하는
문화공간이다.

지난해 5월 첫 발을 내디딘 우리 모임은 영화기획자 배우 캐릭터디자이너
컴퓨터그래픽종사자 광고.마케팅전문가등 다양한 직종의 30대 문화인들로
구성돼있다.

그렇지만 나이에 제한을 두는 건 아니다.

오히려 처음 시작은 20대 회원들이 "설쳐서" 가능했다.

필자와 이혜경 강혜정 김안나씨등 4명이 시작했지만 지금은 17인의
투사로 전력이 늘어났다.

창립멤버를 비롯해 조재홍 신수연 이혜진씨 등은 지금까지 한번도
빠짐없이 참석한 열성파 식구다.

회원들은 한달에 한 번씩 정기적으로 회합을 갖고 3개월마다 야외에서
단합대회를 개최한다.

계절이 바뀌거나 명절때는 고아원과 양로원을 방문하고 불우이웃들을
돕는데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이 중에서도 우리가 가장 힘을 기울이는 것은 영화관객의 저변확대를
위한 노력이다.

회원중에 영화와 과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 많은 탓도 있지만 영상매체의
위력이 갈수록 증대되는 사회현상을 이해하는 지름길이기도 하다.

영화를 사랑하는만큼 생각도 영화적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일"을 벌이게 됐다.

그냥 좋아서 하던 것이 전문영화기획일로 발전한 것이다.

말하자면 영화에 대한 "일과 사랑"을 접목시킨 셈이다.

그런데 영화를 좋아하는 것과 전문직업으로 삼는 것에는 차이가 있기
마련이어서 한번은 모영화사에서 수입한 외국영화를 홍보하는데 시사회가
겹치는 상황이 발생했다.

남산에 있는 옛영화진흥공사 시사실에서 1시, 충무로의 길시사실에서
2시.

그런데 우리가 갖고 있는 프린트는 한벌뿐이었다.

낭패였다.

일정을 조정하기에는 너무 빠듯한 시간.

그순간 2명이 동시에 손가락을 딱 쳤다.

"시네마 천국".

그 영화에서 토토가 자전거로 프린트를 나르는 장면이 생각난 것이다.

잠시 후 전화벨이 울렸다.

밖에 나가 있는 강혜정씨의 전화였다.

"시네마 천국처럼 하면 되잖아요".

어쩌면 이럴수가.

아무리 한솥밥을 먹는 식구라지만 이토록 주파수가 같을까.

하나의 행사가 끝나면 꼭 품평회를 갖는다.

"일"을 시작하기 전부터 모이면 늘 하던 영화얘기며 토론, 때로는
논쟁으로 밤을 지새우는 풍경은 21세기 문화현장의 새로운 좌표를
제시하는 "녹색 만들기"의 모습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