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을 알아야 변화가 시작된다.

정부가 경제진단을 "어렵지만 문제는 없다"고 내리면 국민과 기업에만
고치라 하고 정책은 바꾸지 않는다.

잘못된 정책때문이 아니라 따라주지 않는 민간 때문이라고 믿어서이다.

일본식 경제시스템이 잘못이라는 반성이 최근 일본 정부에서 나온 것은
앞으로 있을 일본의 변화를 예고하는 첫 신호탄이다.

지난주 일본 경제기획청이 발표한 "1996년 경제백서"는 일본 특유의
경제시스템을 구조적으로 개혁하지 않는 한 경제전망은 밝지 않다고
진단했다.

한때는 일본경제의 활력과 안정의 버팀목이라고 자랑스러워 하던
주거래은행제도 종신고용제도 사회보장보험제도가 이제는 개방이
확대되고 선택이 다양해지는 열린 경제에 대한 일본경제의 유연한
적응력을 떨어뜨리는 걸림돌로 인식되기에 이르렀다.

보편적인 경제원칙과 시장원리앞에 "일본적인 특수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각이 드디어 이루어진 것이다.

그동안 일본에서는 개혁적 정치가와 경단연을 중심으로 "경제구조를
개혁해야 일본이 살수 있다"는 주장이 여러 차례 나왔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규제완화라는 방편만을
내세웠다.

지난 3년간의 제로성장과 일본 국민의 상대적 복지상실이라는 비싼
대가를 치르고서야 드디어 일본 정부는 경제사회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구조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1986년"마에카와 리포트"가 나왔을 때 구조개혁을 했더라면 일본은
거품경제 붕괴와 복합불황에 허덕이지 않고 정치적 안정속에서 동아시아
선도국이 될수 있었을 것이다.

바른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정부관료의 타성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이제 일본은 시장원리와 경제원칙에 맞는 구조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첫째 하루빨리 저비용 경제로 이행해야 한다.

높은 땅값은 일본 기업의 토지이용 효율이 더 높기 때문이 아니다.

인허가에 묶여 공급이 제한돼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비싼 생활비는 일본사람의 소비선호가 까다로워서가 아니다.

내수형 서비스 금융업의 생산성이 형편없기 때문이다.

똑 같은 일본 상품이 일본안에서 더 비싼 이유는 출혈수출 기업을
지원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복잡하게 만들어 편하게 장사하려는 경쟁기피 유통체제 때문이다.

열린 경제에서의 치열한 경쟁만이 저비용 비능률을 없앤다.

둘째 국제사회에서 통용되지 않는 일본인 정서에서 벗어나야 한다.

국가경쟁력의 원천은 관료의 애국심에 있지 않다.

개인의 창의력과 기업의 혁신력이 시장에서 보상을 받을수 있을 때 국가
경쟁력이 살아난다.

개방된 체제, 열린 시장만이 경쟁력을 보상하기 때문이다.

일본 사람이 쓰고 먹는 것은 일본 기업이 만들고 일본에서 키워야 한다는
폐쇄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경제원칙에는 예외와 특수성이 없다.

셋째 구조개혁의 첫 걸음은 정부개혁이다.

스스소를 행정서비스의 생산주체라고 말할수 없는 규제조직과 감독관료를
먼저 없애야 한다.

납세자인 국민과 기업을 행정서비스의 고객으로 모셔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