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에 96년 상반기 무역실적 확정치가 발표되었다.

우리나라는 지난 1월부터 6월까지 한번도 거르지 않고 무역적자를
냈다.

적자규모는 76억5,000만달러였고 이것은 연간 적자 억제 목표인
50~60억달러를 크게 넘어섰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올해 무역적자는 100억달러를 쉽게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무역적자는 이제 만성적이고 구조적인 현상이라고 속단하는
사람도 있다.

고금리 고임금 고지가로 인해 기업의 수출경쟁력은 한계에 다다랐고
시장개방과 외환자유로 수입은 앞으로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원화 약세를 유도하여 해외시장에서 우리나라 상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려 해도 지속되는 엔저 현상 때문에 별 효력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외국 바이어들은 국내 수출업자가 갖는 환차익을 나누어
갖자면서 수출품의 달러가격을 내려달라는 요구를 해와 수출업계는
울상을 짓는다는 소식이다.

결국 무역적자의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늘상 논의되는
총론적인 방법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기술진보에 의한 신상품 개발, 수입기계의 국산화, 사후관리 강화,
품질개선 등으로 수출시장의 셰어를 늘려가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들어 수출을 촉진하고 국제투자를 강화하는데 지방정부의
역할이 새삼 강조되고 있어 우리의 눈길을 끌고 있다.

WTO 출범 이후 정부의 직접적인 수출지원은 금지되고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의 역할이 크게 줄게 되었다.

그 대신 지방정부의 역할이 매우 커질 것이라는 진단이 내려지고
있다.

지난 6월 한국국제통상학회는 "세계화시대의 통상정책과 지방정부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국내 세미나를 개최한 적이 있다.

16개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각자의 통상정책을 발표하고 학계
전문가들이 토론하는 형식을 취하는 정책세미나였다.

비록 서울특별시를 비롯하여 몇개 지방정부가 참여하지는 않았으나
세미나는 매우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

지역적 특성을 살린 수출계획과 당면 문제를 지방정부의 통상담당관들이
직접 발표하고 토론했다는 사실은 국가적 통상확대를 위해 매우 고무적이다.

그동안 지역적 특수성을 잘 모르는 중앙정부가 일방적으로 지시하는
통상정책을 지방정부가 위임받아 수행하는 것과는 그 차원이 다른
것이다.

세미나를 통하여 기발한 아이디어와 정책 제안이 속출하였다.

각 지방자치단체의 여러가지 통상정책중 동해를 끼고 있는 강원도의
통상계획이 매우 돋보였다.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북한을 잇는 환동해권 시대에 지리적 우월성을
이용한 강원도의 활력적인 통상전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다만 제약요인으로서 강원도가 지금 해상 육로 항공의 복합운송기점으로서
위력적인 물류기지를 확보해야할 과제를 안고 있다.

경상남도의 해외시장 개척활동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이다.

민선 도지사가 직접 일본과 러시아를 발로 뛰면서 수출 세일즈 활동을
한 결과 수천만달러의 농수산물 수출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도내 중소기업과 농어민들이 생산하는 제품을 해외에 홍보하기 위해
한국무역협회 경남도지부와 공동으로 200여개 업체의 500여 품목이
수록된 카탈로그와 CD-ROM을 재외공관과 해외무역관 그리고 주한
외국공관 및 국내외 전시박람회장에 배포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국제 전산망인 인터넷에도 연결시켜 세계 각국에 365일 24시간
경남도의 수출 특산물을 홍보하고 있다.

전라남도의 통상활동도 매우 의욕적이다.

전남은 중국의 개방화에 따라 해양 지향적인 개발전략을 환황해권에서
실현하고자 하며 그 일환으로 지금 한국과 중국간 황해연안 한중
시.도.성간 협의체 구성이 추진되고 있다.

이것이 실현되면 한중간의 단순한 교류뿐만 아니라 과채류를 포함한
무역규모도 앞으로 대폭 늘어날 전망이다.

안정적인 수출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전남도가 보험료를 지원하는
농축수산물 수출보험제도를 새로 도입할 계획을 갖고 있다.

이처럼 지방자치단체는 기업의 마케팅 개념을 도입하여 단체장이
직접 나서 시장개척과 해외 전시판매와 같은 상업적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나름대로 애로사항도 적지 않다.

통상인력이 모자라고 해외홍보와 수출정보 수집을 위한 예산이 턱없이
부족하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중앙정부의 재정 지원이 필요하다.

또 중앙정부는 지방공무원의 통상교육과 훈련을 위해 통상전문가를
파견하고 해외시장 개척기금을 확충하는 등 지방정부에 대한 지원을
대폭 증대시킬 필요가 있다.

한편 지방정부의 통상활동에도 문제의 소지는 있다.

지방자치단체의 경쟁적인 해외통상활동이 특정지역에 중복됨으로써
인력과 자원이 낭비될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방정부간 또는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간에
협력이 필요하며 따라서 총괄적인 조정기능을 맡을 공동협의회가
설치될 필요가 있다.

앞으로 다가올 21세기 세계무대에서 한국의 영향력은 매우 커질
것이다.

냉전 종식후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주변 강대국을 대상으로 하는
정부의 통상 전략은 고도화될 수 밖에 없다.

지역적 특성을 살려 통상정책을 전개하는 지방정부에 더많은 권한과
예산이 주어져야 할 것이다.

동시에 통상활동에 있어 지방정부와 중앙정부는 상호간에 불필요한
갈등과 마찰을 없애고 협력과 조화를 유지해가는 것이 국가발전을
위해 절대 필요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3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