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필요하다.

그러나 개혁은 정치가들의 지나친 과욕이나 행정관료들의 단기적 성취욕에
의해 추진되어서는 성공할 수 없다.

"변화와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었던 신정부가 규제완화 사업에서 성과를
내지 못하고 이제는 경제활력마저 사그라드는 근본 이유는 시장경제운용의
기초가 되는 행동규칙, 즉 헌법질서를 바로 잡지 못했기 때문이다.

개혁은 철저하게 제도개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부보다는 민간의 개인적 선택, 재산권 행사, 계약과 교환에 있어서
폭넓은 자유가 보호되는 방향으로 자리잡아가야 한다.

글로벌라이제이션 시대, 정보기술혁명 시대에는 국가경쟁력의 실체가
개인의 능력이며 기업의 경쟁력이기 때문이다.

현재 정부가 국가경쟁력강화기획단을 중심으로 추진하고 있는 "경제행정의
투명성 제고"사업은 규제행정을 상위 법률과 세부 시행령 및 시행규칙의
단계적 법규범의 정당성을 정비하는데 치우쳐 있다.

경쟁력강화를 위한 규제철폐 내지 완화와는 거리가 멀다.

지난주 정부의 경제행정규제개혁 실무위원회에 상정된 11개분야별 투명성
제고 과제 64건중 상당수가 규제근거를 신설하고, 규제기준을 상위법령화
하며, 규제용어를 구체화하는 규제강화 케이스임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한편 전경련이 최근 설치한 경제법령실무위원회(가칭)도 경제법령의
선진화를 위한,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에 배치되는 위헌 요소를 찾아 정비를
건의하기 보다는 자칫 법령과 시행령간 상충요소나 애매한 문구를 좇는
민간부속기구로 그칠 위험이 높다.

따라서 치밀한 준비와 연구가 있어야 한다.

우리나라의 법령과 제도가 투명하지 못하다는 국제사회의 비판은 "규제
행정이 분명하지 않다"는 얘기가 아니다.

헌법에서 보장된 선택의 자유, 평등의 원칙, 재산권보장이 구체적이고
명확한 법령위임 없이 현행 법령에서 제약되는 "규제행정이 너무 많다"는
비판이다.

얼마전 한국을 방문한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제임스 뷰캐넌 교수가
"입법부나 행정부조차 이러한 고유의 권리를 침해할 수 없도록 헌법적 제한
(Constitutional restriction)을 가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우리의 현실을
꿰뚫어 본 고언이다.

이제 규제완화개혁은 현행 법체계가 과연 시장의 원리나 건전한 법원칙과
부합하는지부터 따지는 규칙질서 개혁으로 차원을 높여야 한다.

첫째 현행 법령중에서 위헌적인 요소가 있는 것을 추려내 국법체계의
합헌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를테면 기업의 개별적 경영여건에 관계없이 장기보유나 과다보유를
비업무용부동산 판단기준으로 삼도록 위임입법을 포괄적 추상적으로 만든
것은 토지소유억제정책에 치우친 위헌적 법률이다.

둘째 과거 개발연대에 정부의 시장개입근거로 마련한 법령의 입법취지가
아직도 유효한지 검토해야 한다.

새로운 시대 상황에 부합되지 않는 법령과 규칙의 효력을 먼저 정지시켜야
한다.

셋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세계무역기구(WTO) 등 국제기구의
국제규범과 관행을 수용하는 법령정비가 이루어져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