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그룹차원에서 이회장을 IOC위원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공을
들였다.

특히 그룹 스포츠단과 전략홍보팀내의 해외홍보팀은 "이회장 IOC위원
만들기"의 숨은 공로자다.

애틀란타 현지에는 그룹스포츠단 박성인전무를 비롯, 제일기획과
그룹비서실 전략홍보팀 등 10여명의 관계인사가 두달여전부터 체류하면서
이회장 선임에 관한 최종 결정이 나기까지 마음을 졸였다고 한다.

지난주에는 현명관 그룹비서실장까지 이 팀에 합류, 막바지 분위기를
파악한 후 낙관적이라는 결론을 얻은 것으로 안다고 한 그룹 관계자는
밝혔다.

이건희회장의 IOC위원 도전사는 꽤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회장이 이번 애틀란타 총회에서 IOC위원 피선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아주 어렸을 때의 꿈이 실현된 것"이라고 언급한 부분은 이를 시사한다.

그러나 실제 구체적인 움직임이 있었던 것은 지난 80년대초부터.

한국레슬링협회장을 맡으면서 불모지대나 다름없던 국내 레슬링계에
과감한 지원을 쏟아부어 한국레슬링을 메달박스로 만들었다.

여기에는 이회장 자신이 사대부고 1학년 재학당시부터 직접 레슬링선수로
뒤었던 경험도 크게 작용했다.

88년 올림픽을 치르고 한국에 추가 IOC위원 선임권이 주어지면서 이회장의
행보는 빨라지기 시작했다.

따라서 삼성그룹의 움직임도 보다 구체화됐다.

지난 93년에는 올림픽위원회에 2백만달러를 후원해 올림픽 박물관을
짓는데 도움을 줬다.

94년 로잔느 총회와 지난해 부다페스트 총회에서 잇달아 IOC위원 꿈이
무산되기도 했다.

삼성이 이번 애틀란타 올림픽 기간중에 "삼성 엑스포"관을 개관한 것도
이같은 스포츠 마케팅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 이의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