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분위기에 한창 들떠있던 지난해 12월 신촌의 한 닭갈비집.

전체수석으로 서강대에 입학했으나 한때 고시생으로 전락(?)했던
이학준(영문3), 부산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후 공인회계사가 되겠다며
서울시립대 회계학과에 편입한 윤한성, 그리고 학준이의 대학후배로
군입대를 앞두고 있는 김태원(불문3), 이 세 젊은이들은 닭갈비와 영화
이야기를 안주삼아 부지런히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장 뤽 고다르"가 어떻고 "미장센"이 어떠니 하며 서로의 영화지식을
늘어놓던 이들은 어느순간 술기운이 확 가시게 된다.

"야 이러지 말고 우리가 한번 영화를 만들어 보자" "도원결의"를 연상케
하는 "계륵가(계륵가:닭갈비집)결의"를 통해 영상집단 "이클립스"라는
조그마한 영화 동아리가 탄생한다.

해가 달을 가리듯 꿈으로 현실을 가려 보겠다는 것이 동아리명의
취지라나.

우선 동지들을 모아야지.

고등학교때부터 여성 촬영가를 꿈꿔 왔다는 박승연(이대 철학2),
아르바이트로 CF음악을 만들 정도는 되는 조동철(시립대작곡4), 서강
TV 프로듀서인 조혜연(영문3)등 13명의 끼 있는 친구들이 이래저래 모였다.

이제 영화를 만들자.

해방직후 좌우 이념대립의 허구를 주제로 학준이가 준비해 놓은 대본은
있는데 문제는 돈이 없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마침 태원의 여자친구 아버지가 은행 지점장이었고 그 미래의 장인(?)을
1주일간 졸졸 쫓아다닌 끝에 200만원을 빌리는데 성공했다.

이 돈과 자체조달한 100만원등 300만원으로 "영웅이야기"라는 36분짜리
8mm 영화 한편을 찍었다.

서강대 주변과 경기도 운정역등을 배경으로 6일만에 완성했다.

준비가 부족한 만큼 내용은 좀 어설퍼도 어쨌든 영화는 만들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이 영화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보게 할까.

월트 디즈니사가 인터넷으로 영화 광고를 한다면 우리는 인터넷으로
영화 전편을 상영하자.

홈 페이지 주소는 http://www.sogang.ac.kr.

그러나 "무지했기에 용감할 수 있었던 것"일까.

현재 국내 기술상 인터넷상영 최장 시간은 1회에 2분이 고작이다.

그나마 6월초 첫 2분을 올린 후에 동아리내 컴퓨터 권위자인 한성이가
아파서 인터넷 작업이 중단되고 말았다.

"처음으로 시도했다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닙니까.

아니 그 보다는 우리들의 열정이 더욱 끓어오르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재산입니다.

지켜봐 주십시오.

이클립스에서 앞으로 한국영화를 이끌어 갈 "쟁이"들이 몇명은
나올테니까요"(이학준)

< 윤성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