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 산업연 연구위원 >

현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규제개혁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 같다.

그러나 그동안 추진한 규제완화의 양, 정부의지의 강도에도 불구하고
규제개혁이 미흡하다는 목소리는 여전히 크다.

실제로 기업들이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규제가 아직 많다는 것은 여기저기서 불거져 나오는 부조리 부패 사례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정부의 규제는 부패를 낳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

물론 대부분의 규제들이 국가의 중대한 정책적 필요성에 의해 만들어지므로
시행 초기에는 그 정책적 목적에 충실하게 운용된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정부의 규제들은 나이가 들면 들수록 정책 목적의 달성이라는
순기능보다는 부조리, 나아가 부패의 발생이라는 역기능이 더욱 두드러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어떤 정부규제가 그것을 넘어설 경우에 너무나 큰 이익을 보장해
준다든지 혹은 그것을 지키기에는 너무나 큰 비용을 들게 한다면 피규제자
들에게는 어떠한 비용을 치르더라도(기대되는 이익이나 정상적인 비용보다
작기만 하다면)규제를 뛰어넘거나 우회하고자 하는 유혹이 생길수밖에 없다.

그리고 정책적 목적이 희석되어 버린 규제를 운용하는 일선 담당자들은
이러한 강력한 부패의 유혹에 무방비하게 노출되어 버리는 것이다.

이하에서는 부조리와 부패를 낳는 각종 규제들을 유형별로 나누어 살펴
보고자 한다.

경제적 규제들은 대부분 그 규제를 넘어서면 큰 이익이 보장되므로 이익
유발형 규제로, 대부분의 사회적 규제들은 규제를 지키려면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므로 비용발생형 규제로 크게 대별해 볼수 있을 것이다.

먼저 이익유발형 규제와 부조리 발생의 유형을 살펴보자.

<> 관문형 규제

=대부분의 인.허가 규제를 비롯하여 이를 완화한 형태인 신고제등의
진입규제는 이 규제를 넘어서면 이익이 보장된 세계로 들어서게 되므로
인.허가권 혹은 신고접수권을 관장한 부처의 공무원과 이 권리를 얻고자
하는 기업과의 사이에서 부조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커지게 된다.

<> 지대추구형 규제

=특정한 경제활동을 영위할 자격을 부여하는 면허제도 역시 넓은 의미로
본 관문형 규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여기에 덧붙여 대부분의 면허는 소수에게 한정된 것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불법적(혹은 합법적)으로 대여되어 "지대"를 얻고자 하는 부조리 발생의
원인이 되고 있다.

<> 이익배분형 규제

=정부가 향후 막대한 이익을 보장해 주는 경제활동을 배정할때 그 배정
방법에 따라 부조리가 발생할 소지가 있다.

부조리 발생여지가 가장 적어지는 방법은 공개입찰 방식이겠으나
우리나라는 경제력 집중을 우려하여 인위적 배분방식을 채택하고 있으므로
부조리의 발생가능성이 커지게 된다.

<> 권익보호형 규제

=정부부처가 특정 경제활동의 공공성을 중시하여 기존 사업자의 권익을
지나치게 보호하는 과정에서 정부부처와 기존사업자간의 결탁에 의해
부조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 생존권 보장형 규제

=정부가 특정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사업자의 퇴출을 막아줌으로써
지나친 투자와 방만한 경영을 유발하는 경우가 있다.

즉 마지막 순간에는 정부의 지원을 받을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경우
기업들은 일단 투자해 두려는 태도를 가지게 되고 경영이 방만해지기 쉽다.

다음으로 손실발생형 규제와 발생 유형을 살펴보자.

<> 고비용형 규제

=많은 사회적 규제들 중에는 그 강도가 지나치게 강하여 규제를 준수하는데
높은 비용이 드는 규제가 많다.

이 경우 규제담당 공무원에게 뇌물을 주어 규제를 회피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일 뿐만 아니라 적발되었을 때의 위험비용까지 감안하더라도 큰
부담이 되지않는 경우가 많다.

<> 비현실적 기준형 규제

=현실과는 동떨어지는 기준을 설정하거나 정부 스스로가 검사 감독할
능력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잦은 검사 감독을 설정함으로써 감독관청의
재량으로 불법이 묵인되는 경우가 많고 그 묵인의 반대급부로 부조리가
발생하게 된다.

특히 대형사고가 난뒤에는 이러한 비현실적 규제가 강화되곤 하는데
이는 규제준수의 가능성을 더욱 희박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 불법조장형 규제

=특정 경제활동에 대한 가격규제가 지나치게 엄격하거나 현실적으로
정상이윤을 보장해 주지 못함으로써 감독이 소홀한 평상시에는 거의
불법적인 영업활동을 하도록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택시요금 규제가 합승행위를 조장하고 금리 규제가 은행의 불법영업을
조장하는 경우등의 예를 들수있다.

결국 규제개혁의 추진은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뿐만이
아니라 이러한 부패나 부조리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다.

규제는 가능한한 현실여건에 맞추어 설정하고 일정한 시기가 지나가면
자동적으로 새로이 검토하고 개혁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