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정 < 삼성경제연 수석연구원 >

최근 급변하는 경영환경 변화로 불과 몇년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환경을
맞이하면서 일부 기업이나 조직들은 근면 성실하게 열심히 일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한계기업 내지 한계 조직으로 도태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다.

이는 기업이나 조직을 둘러싼 환경이 예측할 수 있는 경영환경에서 예측할
수 없는 "전이적 경영환경"으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러한 변화를
인식하지 못하고 적응하지 못하는 기업이나 조직들이 도태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전이적인 경영환경에서 기업이나 조직은 환경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특히 급격한 환경변화로 인해 기업이 기회를 선점할 수 있는 요소중의
하나가 스피드 경영인데 스피드만을 요구하다가는 기업에 리스크를 초래할
우려가 있으므로 이러한 우를 범하지 않기 위해 사전에 발생가능한
시나리오를 그려보는 지혜가 필요해진다.

이는 곧 장래에 일어날 사건의 줄거리를 가상적인 시나리오로 구성해
불확실한 미래 환경을 장기적인 시각을 갖고 대응하는 경영기법이다.

비록 상상일지라도 인과(cause-effect)관계를 갖고 실감나게 구성된
줄거리는 사건전개 과정을 보다 명확하게 제시할 수 있어 경영자와
구성원들이 미래변화에 적응하는데 도움을 준다.

이런 시나리오 기법을 통해 기업에서는 생산-판매-영업-기술 등 관련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향후 나아갈 방향에 대해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한 대처방안을 함께 작성해봄으로써 전체 조직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각자의 역할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다.

조직내 공유된 가치관으로 관련 부서간의 협조와 각 부서의 역할이
선명해져 상황변화에 대한 대처 능력이 뛰어나게 된다.

시나리오를 작성하기 위해선 조직내 관련 분야의 사람들이 모여 의사결정에
미칠 주요 결정요소(key decision factor)를 찾아보고, 이 결정요소에 영향
을 줄 변수들을 찾고, 이중 미래에 영향력이 크면서 불확실한 변수들을
찾아 의사결정을 위한 미래 시나리오를 작성하는
것이다.

이러한 시나리오 경영기법으로 성공을 거둔 기업중의 하나가 세계적인
정유회사인 셸이다.

셸은 과거 낮은 유가로 누구도 유가변동을 예측하지 못하던 시절 시나리오
기법을 통해 조만간 에너지 위기가 도래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해 세계 7위의
메이저 석유회사에서 2위로 탈바꿈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이에 반해 시나리오 전문가들은 80년대에 만일 IBM이 지금과 같은 폭발적인
PC 수요와 컴퓨터 네트워크의 잠재성을 제대로 분석하는 시나리오를 개발
했었더라면 현재의 IBM 위치는 달라졌을 것이리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기업의 시나리오 능력은 기업의 승패를 좌우하고 있어 미국 일본등
선진 기업에서는 내부적으로 널리 사용하고 있으나 내용의 성격상 공개하기
어려운 사항이 많아 국내에는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태이다.

시나리오 경영기법은 기업경영뿐만 아니라 각종 단체등 사회 공공부문
에서도 필요하다.

삼풍백화점과 성수대교 붕괴등 이어져온 대형사고를 계기로 사회 공공
시설물에 대해서도 또 다른 대형 참사를 막기 위해 "공공시설물은 반드시
붕괴된다"는 전제하에 각 시설물에 대한 붕괴 시나리오를 작성해 사고의
원인을 사전에 점검해보는 것도 바람직하다.

사고의 전개과정을 시나리오로 묘사하여 구성원들의 맡은 바 업무와
그 중요성을 이해시키고, 사고발생시 위기상황에 대한 대처능력을 높일
필요가 있다.

시나리오는 안정되고 지속적인 환경보다는 불안정한 환경속에서 미래를
예측하는데 효과적이어서 새롭게 전개되는 정보통신분야 등에서 향후
10년까지 전개될 기술의 발전과정을 시나리오로 그려 커다란 기술흐름을
파악한후, 주기적으로(3-6개월 단위) 새롭게 나타나는 기술과 시나리오상의
기술전개과정을 비교해봄으로써 항시 향후 10년까지의 미래기술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가능하다.

시나리오는 처음 작성하기는 힘들지만 일단 완성된 시나리오는 부분적인
수정을 가해 쉽게 전체 시나리오를 재작성할 수 있으므로 전구성원들이
기술의 진척상황과 향후 기술의 변화방향을 항시 공유할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