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앙이 너를 몇 년 동안 보아왔지만, 너를 볼 적마다 그냥 시녀로
있기에는 아까운 애라는 생각을 늘 하였지.

근데 이번에 우리 영감님의 눈에 네가 든 모양이야.

우리 영감님이 누구보다 너를 바로 곁에 두고 싶어 하는구나, 나도 너를
아끼고 있던 차에 잘 되었다는 생각이 들고 말이야.

그래서 시어머님께 말씀 드려서 너를 데려가려고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떻니?"

형부인이 원앙의 표정을 살피며 잠시 말을 멈추었다.

원앙은 입을 꼭 다물고 아무 대답이 없었다.

형부인이 다시 입을 열었다.

"너를 우리 영감님의 시녀로 데려가려는 것이 아니라 이랑 (첩)으로
들이려는 거야.

머리를 올리고 당당하게 이랑이 되면 체면도 서고 신분도 높아지는게
아니겠니?

시녀들을 부리면서 대접도 융숭하게 받고 말이야.

평소에 너를 못살게 굴던 아랫것들이 있었으면 단단히 혼을 내줄 수도
있고.

시녀로 있다가 웃어른의 눈에 들어 이랑이 되는 경우가 그리 흔한 것도
아니잖니"

형부인은 이 정도 이야기하면 원앙의 얼굴에 반가워하는 기색이 감돌 줄
알았는데 원앙은 고개만 푹 숙이고 있었다.

이 애가 속으로는 좋은면서 부끄러워서 그러나.

형부인은 또 한번 원앙의 마음을 달래려고 애를 썼다.

"옛말에도 보면 말이다.

금은 어디까지나 금으로 바꾼다 (금자종득금자환)는 말이 있지,
금덩이는 어디에 있든지 금인 거지, 티끌이나 진흙이 묻어 있어도 금은
금인 거지, 그처럼 원앙이 너는 시녀들 속에 있어도 빼어나 보인 거야.

그러니까 우리 영감님이 너를 금을 보듯이 한 거지"

이렇게까지 원앙을 부추겨주는데도 원앙은 묵묵부답이었다.

형부인은 자존심도 상하고 속이 타서 안절부절못하다가 원앙의 손을
덥석 잡아끌었다.

"지금 당장 나랑 같이 대부인 마님께 가서 이야기를 드려보자"

그러나 원앙은 형부인의 손을 슬쩍 뿌리치면서 돌아앉아 버렸다.

형부인이 보니 원앙의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올커니, 부끄러워 하는 게 틀림 없어.

형부인은 될 수 있는 대로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며 원앙의 어깨를
다독겨려 주었다.

"그렇게 부끄러우면 너는 아무 말도 할 필요가 없어.

내가 다 일아서 할 테니까, 그저 나만 따라와 앉아 있기만 하면 돼"

형부인이 다시 원앙의 손을 잡아끌었으나 원앙이 버티면서 모기만한
소리로 말했다.

"이러시면 안 돼요"

애가 부끄러워 해도 너무 한다 싶어 형부인이 언성을 높여 윽박지르기
시작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