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산업에서 중간은 없다.

개발한 제품이 최고로 인정받지 못할 경우곧 쓰러질수 밖에 없는 곳이
소프트웨어시장이다.

이 시장이 하나의 태양을중심으로 몇몇 행성과 수백개의 별들이 궤도를
따라 맴도는 우주로 비유되는것도 이 때문이다.

마이크로소프트의 도스나 윈도는 지금까지 각종 PC소프트웨어의 별자리를
정해주는 "중력"에 비유되어 왔다.

빌 게이츠는 새로운 제품을 내놓을때 상품성이나 마케팅방법 따위에 대해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적당한 가격을 매겨 놓고 "새상품을 살 시기"라고 선언하면
그만이었다.

때문에 새로운 소프트웨어제품이 나올때는 "시판"보다 "발표"라는 표현이
더 적당하다.

소프트웨어산업의 이런 특성은 최근 인터넷 소프트웨어시장을 발판으로
삼아 새별로 등장한 넷스케이프의 사례를 보면 더욱 쉽게 알수 있다.

94년 6월에 출범한 이 회사는 95년초 인터넷 웹브라우저(검색소프트웨어)인
"네비게이터"를 개발, 인터넷 사용자들에게 무료로 배포하면서 일약 스타로
등장했다.

넷스케이프는 사용자들이 충분히 사용방법에 적응할 때까지 6단계의
테스트판(베타버전)을 내놓았다.

지난해말에는 자바가 인터넷 기반언어로 자리잡게되자 재빨리 자바지원
프로그램을 개발, 사용자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삽시간에 전체 인터넷사용자들의 80%이상을 장악했다.

무료라는 매력때문에 네비게이터가 널리 보급되자 넷스케이프는 올해초에
드디어 상용화를 선언했다.

베타버전에 일부 기능을 보강해 "네비게이터 2.0"이라는 이름으로 유료
웹브라우저를 내놓은 것.

기존 네비게이터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자사웹사이트는 물론
세계각국 PC통신서비스업체의 공개자료실에서도 베타버전을 완전삭제시켰다.

이미 네비게이터에 길들여진 인터넷사용자들은 넷스케이프의 유료화정책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시장주도권을 확신한 넷스케이프는 한술 더떠 지난 2월부터 "플러그 인"
정책을 펴고 있다.

플러그 인이란 넷스케이프가 새로운 웹응용소프트웨어 규격을 제시하면
다른 소프트웨어업체가 이를 기초로 제품을 개발한다는 의미.

넷스케이프는 이미 이 정책에 따라 20여개의 규격을 발표했고 현재
70여개를 개발중이다.

플러그 인에 참여하고 있는 소프트웨어업체는 50여개사.

이와같이 소프트웨어시장에서는 시장경제의 원리가 통하지 않는다.

경제학의 한계이윤체감 법칙이 통하지 않는게 소프트웨어산업이다.

한 제품이 크게 히트치면 모방제품이 잇따라 쏟아져 들어와 시장은
포화상태에 이르고 따라서 그 제품의 이윤은 점차 줄어든다.

그러나 소프트웨어시장에선 제품보급속도에 비례해 단위제품당 생산자의
이윤이 더욱 늘어난다.

"한계이윤체증"의 법칙이다.

한번 승자는 영원한 승자가 된다.

독점금지법을 위반하지 않는 "사실상의 독점행위"가 벌어지는게
소프트웨어시장이다.

이유는 소프트웨어 제품자체의 몇가지 특징때문이다.

우선 소프트웨어제품은 암호화된 코드로 설계되어 있어 그 내용을 눈으로
쉽게 알수 없다.

일반공산품은 완제품을 보고 설계를 짐작해 제조과정을 모방할수 있지만
소프트웨어는 불가능하다.

모방의 귀재인 일본기업들이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만은 미국기업들을
따라잡지 못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프트웨어제품의 경쟁력을 가늠할 때 가장 중요한 잣대는 호환성이다.

현재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제품과 호환될수 있느냐 없느냐가 제품성패의
최대관건인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소프트웨어제품도 다른 범용소프트웨어와 호환될수 없을땐
참패한다.

이런 특징들 때문에 소프트웨어시장에선 "부익부 빈익빈"이 자연스런
법칙이다.

그래서 "10명의 범인보다는 1명의 천재"가 더 필요한 곳이 소프트웨어
산업이다.

< 박순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