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부터 선진형 노사관계가 정착돼 있는 유럽의 대부분 지역에서 올들어
노사분규가 격렬해지고 있다는 소식은 선진형 노사관계 구축을 모색중인
우리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다.

독일에서는 공공서비스부문 노동자 10만여명이 정부의 긴축정책및
임금동결에 항의해 파업을 벌였고 프랑스에서도 국영기업민영화방침등을
둘러싸고 또다시 대규모 파업이 예고되고 있다.

북유럽의 파업사태는 한층 심각해 노르웨이에서는 사상 처음 북해유전의
원유생산이 차질을 빚는가 하면 500여 공장의 생산활동이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는 소식이다.

노르웨이의 이같은 파업사태는 스웨덴등 인접국으로 파문이 확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니 서구 주요국들이 거의 모두 분국 태풍권안에
들게된 셈이다.

미국 일본을 비롯한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참여와 협력을 통한 신노사
문화가 정착돼가고 있는 마당에 어째서 "복지천국""근로자천국"이라고
하는 서구국가들이 노사분규 몸살을 앓게 되었는지 우리로선 관심을
갖지 않을수 없다.

한마디로 원인을 요약한다면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기업과 정부는 시대적 요청인 산업구조조정에 실패함으로써 무력증에
시달리고 있고 근로자들도 국제노동계의 새로운 물결을 수용하지 못한채
무사안일에 젖어있다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특히 2차대전이후 극심한 노사반목에 시달리던 미국이 70년대이후
대기업을 중심으로 이를 협력적인 관계로 전환시킨 것과는 대조적으로
2차대전후 원만한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패망을 딛고 초강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독일이 최근 노사대립에 시달리고 있음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오늘날 유럽이 당면한 노사문제는 정부주도로 노사개혁의 첫발을 내디딘
우리에게 적지않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무엇보다도 인권.복지위주의 노동정책은 경제가 나빠지면 이내 한계를
드러낸다는 점이다.

근로자의 인권과 복지에 관한 제도적 보장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스웨덴 노르웨이 독일등 유럽국가들도 일단 경기침체 앞에서는 노사불안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노사개혁은 주로 법개정을 통한 제도개혁에 중점을 두고 있지만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경제상황과 근로자의 의식구조라고 봄이 옳다.

근본적으로 노사문제도 종합적인 경제정책의 테두리 내에서 다뤄져야
한다.

유럽의 파업사태에서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또 한가지 교훈은 복수노조의
폐해애 관한 것이다.

일례로 스웨덴근로자들의 구심점이었던 스웨덴노총(LO)이 화이트칼러노총
(TCO) 전문직노총(SACO)등의 등장으로 그 영향력이 약화돼 오늘날과 같은
개별행동이 빚어졌다고 볼 때 지금 한창 국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노조단체의 복수화는 신중하게 생각해봐야 할 일임에 틀림없다.

끝으로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부가 힘으로 밀어붙여 바람직한 노사관계를
만들어주겠다는 환상은 금물이라는 점이다.

오늘날 유럽의 복지국가들이 직면한 노사문제는 바로 그같은 환상에서
비롯됐다고 보는 전문가들이 많다.

지금 우리의 노사관계에서 기업과 근로자 모두에게 자생력을 길러주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없다.

정부의 역할은 그 선에서 끝나는 것이 좋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