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로 예정됐던 "유화 민간투자 자율조정협의회" 출범이 상당기간
늦춰지게 됐다.

석유화학 분야의 투자는 민간 자율조정에 맡기겠다는 통산부 방침에 따라
발족키로 했던 이 협의회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제동을 걸고 나섰기
때문이다.

공정거래위는 석유화학 업계의 투자조정이 공정거래법 19조에서 금하고
있는 "생산 또는 용역거래를 위한 설비의 신설 또는 증설이나 장비의 도입을
방해하거나 제한하는 행위"에 해당된다고 볼수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에 따라 유화업계는 자율조정협의회 발족을 두 부처간 협의가 끝날때까지
미루기로 했다.

NCC(나프타 분해공장)신설 허용여부에 대한 결정도 자동적으로 미뤄지게된
셈이다.

우리는 이같은 경위를 지켜보면서 "투자는 누가 결정해야 하는가"라는
지극히 원론적인 질문을 다시 한번 던지게 된다.

두말할 것도 없이 법률로 금지 또는 제한하는 업종의 투자가 아닌 이상
누구나 자유롭게 자기 책임아래 투자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

기존 사업자들이 모여 "자율조정"을 해야 할 이유가 없다.

법률적으로 인허가권을 행사할 근거가 없기 때문에 경쟁관계에 있는
동업자간 협의에 맡긴다는 형식을 빌려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드는 행정이라면 문제가 있다.

바로 그런 점에서 우리는 우선 통산부가 석유화학 투자를 자유화하겠다면서
동업자간 사전조정을 사실상 제도화하려는 의도가 무엇인지 의아스럽게 여길
수밖에 없다.

공정거래위도 문제다.

동업자간 "자율조정"이 신규참여를 제한하고 경쟁을 제약하는 것이란
공정위의 시각은 100% 타당하다.

그러나 석유화학 투자는 업계의 조정을 거치도록 제도화하겠다는 통산부
방침이 밝혀진 것이 어제 오늘이 아니고 보면 공정위행정 역시 문제가
없지 않다.

왜 정부차원에서 미리 협의를 할수 없었을까.

그 이유가 무엇이든 투자허용 여부에 대한 결정이 미뤄지면 결국 피해를
보는 것은 사업자다.

"자율조정"은 논리상 문제가 있지만 이번 석유화학 업계의 경우 NCC
신-증설을 희망하는 업체수가 그렇지 않은 업체보다 많기 때문에 업계에
맡겨두면 결국 신-증설이 허용되게 돼있었다.

그러나 통산부와 공정위가 업계자율조정이 타당한지를 놓고 장기간
논쟁이라도 벌이게 되면 얘기는 달라진다.

신.증설희망업계로 볼때는 가장 바람직하지 못한 상황이 빚어질수도 있다.

석유화학에 이어 신규참여 제한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제철업이다.

두 업종 모두 신규참여를 희망하는 쪽이나 반대하는 쪽이나 내세우는
논리는 수급전망에 근거를 두고 있다.

모자란다는 주장과 남는다는 주장이 맞서있다.

수급전망은 시각에 따라 차이가 날수 밖에 없기 때문에 논쟁은 끝이
있을수 없다.

신규참여에 대한 제한은 그것이 어떤 형식이든 없어져야 한다.

엄청난 자본을 투자하고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질 당사자가 알아서
할 일이다.

해외투자는 자유화한다면서 국내에서의 공장 신설은 이래저래 어렵기만한
현실은 아무래도 문제가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5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