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옥은 후비가 보내준 선물들을 모으더니 시녀 자초를 불러 지시하였다.

"너, 이것들을 대옥 아가씨에게 모두 가지고 가서 대옥 아가씨가
원하는 대로 마음껏 골라 가지라고 하여라"

보옥은 대옥이 선물을 적게 받아 서운해 하는 마음을 그런 식으로나마
달래주고 싶었다.

그런데 심부름을 갔던 자초가 물건들을 그대로 도로 가지고 와서
보옥에게 아뢰었다.

"대옥 아가씨는 자기에게도 선물로 받은 물건들이 있다면서 더 이상
갖고 싶은 게 없다고 했어요" "비단이랑 방석은 받지 않았으면서."

보옥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며 대옥이 물건을 받지 않은 진짜 이유가
무얼까 추측을 해보았다.

보옥은 자기가 물건들을 보냄으로써 괜히 대옥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은
아닌가 염려가 되기도 하였다.

더군다나 시녀 자초 편에 그 물건들을 보냈으니 더욱 그럴지도 몰랐다.

보옥은 자기가 직접 물건들을 가지고 가서 대옥을 달랠 걸 후회하는
마음이 들었다.

보옥은 세수를 하고 대부인에게 아침 문안 인사를 드리러 갔다.

마침 보채가 거기 와서 후비로부터 받은 선물 자랑을 하고 있었다.

보옥이 보채에게로 다가가 말했다.

"보채 누이, 어제 선물로 받은 홍사향 염주 한번 보여줘. 내가 받은
것이랑 같은가 보게"

보채는 그 염주를 이미 왼쪽 손목에 차고 있었다.

"좋아요 보세요"

보채가 오른손으로 염주를 벗기려고 하였으나 워낙 보채의 팔과 손이
통통하여 잘 벗겨지지 않았다.

보채의 팔과 손은 통통할 뿐아니라 백옥같이 희고 매끄러워 보였다.

날씨가 점점 더워져 시원한 옷차림들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보옥의
눈에 보채의 팔과 손이 유난히 아름답게 비쳤는지도 몰랐다.

보옥은 보채의 팔과 손을 만져보고도 싶고 깨물어보고도 싶은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고 염주 벗기는 일을 돕는다는 핑계로 보채의 팔을
두 손으로 꼭 쥐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그팔의 감촉이 튼튼하게 느껴지면서 매끄럽기 그지
없었다.

그때 보옥은 희기는 하지만 병약하여 비쩍 마른 대옥의 팔을 떠올리며
좀 엉뚱한 생각을 하였다.

이렇게 튼튼하고 아름다운 팔이 대옥에게 붙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어느새 보옥은 보채와 대옥이 알몸이 되었을 때를 상상해 보며 그 둘을
비교하고 있었다.

보채는 젖가슴과 엉덩이도 통통하여 실한 반면 대옥은 그 부분들도
빈약할 것이었다.

대옥이 대옥 그대로 있으면서 보채의 몸을 가질 수는 없을까.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