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서식하여 "호랑이의 나라"로 지칭되었다.
호랑이가 인간에게 미치는 폐해가 매우 심해 사람이나 가축이 입는
환난을 "호환"이라고 일컬어졌을 정도였다.
"삼국사기"신라본기에도 885년 (헌강왕11)2월에 호랑이가 궁궐마당으로
뛰어들어 왔다고 기록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옛날에는 호랑이의 피해가
한반도 전역에 걸쳐 극심하였음을 알수 있다.
그렇게 많은 피해를 당했던 한민족으로서는 인식할수밖에 없었다.
단군신화에 호랑이가 인간이 되길 간절히 원했지만 그 야성을 순회시키지
못하고 동굴에서 뛰쳐나와 땅속에 머무르고 만다고 되어있는 것도 호랑이가
인간과 친화될수 없는 동물임을 말해주는 것이었다.
그 두려움은 호랑이를 한민족 특유의 신앙대상이 되게 했다.
그 퐁속은 산천을 호통한다. ...범에게 제사를 지내고 그것을 신으로
섬긴다는 "후한서" 등이 전의 기록은 산과 호랑이를 숭배하는 풍속이
원시부족국가시대부터 있었던 것임을 알게 해준다.
그러한 풍속은 호랑이를 산신으로 떠받드는 산신신앙으로 자리를
하게 되었다.
호랑이는 두려운 존재로서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풍속설이나
설화 민화에서는 한민족의 생활과 밀접한 동물로 등장했다.
풍속설에서는 서쪽의 방위신이 백호가 되고 설화에서는 신통력을
지니거나 인간을 도와주는 명물로, 민화에서는 귀신을 물리치거나
길상을 가져다 주는 등도 묘사되었다.
한민족의 의식 싶숙히 자리한 원시신앙의 대상이었던 호랑이가
남한지역에서 완전히 멸종되었다는 정부의 공식 확인보고는 우리의
뿌리를 잃어버린 것같은 허탈감을 갖게 한다.
오래 전인 1943년 이후로 남한지역에서 그 종적이 사라진것으로
알려지긴 했었지만 멸종되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알수도 없었을테니
말이다.
호랑이는 원래 한반도와 중국 동북지방, 러시아 연해주일대에 널리
서식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백두산 일대의 10여마리를 비롯 중국 동북지방의
소흥안령, 러시아 연해주의 흑룡강계곡에 극히 소수가 생존해 있는것으로
추정되고 동물원의 66마리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고 한다.
그 전멸의 주된 원인이 남획과 삼림남발이라니 인재의 가공스러움을
다시금 확인하게 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