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발상지인 고대그리스의 철학자들은 정치의 목적을 "인간적
선 내지 사회전체의 전의 구현"이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인간이 정치생활을 영위해야만 비로서 윤리적으로 완성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들에게 있어서 정치참여는 필연적인 것이었다.

공동체 전체의 복지가 향상되지 않고는 어느 개인이나 가정도 행복해질
수 없다는 그들의 "공동체"의식은 "공동선"이 개개인의 협조없이는
성취되지 않는다는 지혜를 터득하게 했다.

그렇게해서 생긴 "국가"는 사회협동의 구성체였다.

이런 사상을 토대로 이루어진 민주주의의 꽃"은 역시 "투표"다.

직접 국민주권이 행사되는 과정이자 정치적 불평등을 최소화하는 과정이
"선거"일 수 밖에 없기때문이다.

주권을 행사하기 위한 선거권을 얻기 위한 인간의 투쟁을 돌아보면
눈물겹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700여년의 의회역사를 지닌 영국에서조차 성인
남자의 선거권이 완전히 실현된 것은 1918년이었고 여성이 선거권을 갖게된
것은 1928년이었다.

전국민의 10%에서 모든 남녀성인이 선거권을 갖게되기까지 500년안팍의
민투쟁이 지속된 셈이다.

한국 최초의 초대국회 구성을 위한 총선이 실시된 것은 1948년5월10일
이었다.

그때는 UN이 산파역을 맡았다.

당시 유권자들 가운데는 투표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도 많았다.

막걸리 한 잔, 고무신 한 켤레에 주권을 판 사람도 많았고 남의 지시에
따라 기계적으로 붓뚜껑을 누른 사람도 많았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를 새로 세운다는 일념에서 784만여명의 유권자중
95.5%가 참여하는 높은 투표율을 보였다.

근래들어 12대 총선 84.6%, 13대 75.8%, 14대 71.9%로 투표율이 점점
떨어진 것을 보면 유권자의 투표에 대한 무관심도 일종의 "선진국병"의
하나 인듯 한 느낌도 든다.

하지만 정보화사회의 도래와 함께 어느 누구도 지배하지 못하는
아나키스트들의 유토피아 사회가 왔다고 보기에는 아직 이르다.

"4.11총선"의 투표율이 사상 최저로 떨어질 것 같다는 우려의 소리가
높다.

대립된 견해를 변증법적으로 조화시키는 가운데 보다 타당한 견해를
발견하는 것이 본래 민주주의의 공식이다.

마음에 드는 정당이나 후보자가 없다고 해서 주권을 포기해서는
민주시민의 자격이 없다.

최선이 안되면 차선을 택하는 평범한 민주주의의 한 과정이 투표일
뿐이다.

일반적으로 투표란 고 어떤것에 찬성해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인가에
반대해서 하게되는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말도 염두에 두었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