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의 결함으로 발생한 손해를 상품제조업자가 배상토록 하는
이른바 "제조물 책임"은 그 결함이 상품의 안전성 결여가 아닌 품질상
하자로 인한 경우에는 적용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서울지법 동부지원 민사합의6부(재판장 김영식 부장판사)는 13일
운동복제조업자 이모씨의 유족이 원단의 품질상 하자로 인해 손해를
입었다며 원단제조업체인 동양섬유산업과 충남방적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이유없다"며 원고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은 아직 국내에서 입법화되지 않은 "제조물 책임"에 대한
손해배상의 범위를 규정한 것이어서 주목된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제조물 책임이란 시장에 유통된 상품의 안전성
결함으로 인해 그 상품의 이용자 또는 제3자가 생명, 신체, 재산상의
손해를 입었을 경우에 제조자 또는 판매자가 배상토록 하는 것"이라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이어 "원고측이 중간도매상을 통해 피고회사측으로부터 매수한
원단이 염색과정상의 문제로 햇빛에 변색되는 정도가 한국공업규격상의
품질 기준치에 미달된 점은 인정된다"며 "그러나 이 품질상의 기준미달은
중간도매상에게 하자담보책임을 물을 수 있을 뿐 이용자등에게 부당한
위험을 발생시킬 정도의 안전성 결여에 해당하지 않아 제조물 책임의
법리를 적용할 수 없다"고 기각사유를 밝혔다.

이씨유족은 93년 1월께 직물도매상인 박모씨를 통해 동양섬유산업과
충남방적으로부터 운동복용 원단을 구입,남녀 운동복을 제조.판매하던중
원단의 탈색으로 인해 12억여원의 손해를 입었다며 소송을 냈다.

< 한은구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