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자유화가 단계적으로 착실하게 추진되고 있고 금융시장규모도 엄청나게
커졌으니 통화관리방식도 개선해야 한다는 논의가 꾸준히 있었다.

이경식 한국은행총재가 지난 11일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국제결제은행(BIS)
회의에서 중심통화지표를 바꾸고 지급준비율을 낮추는 방안 등을 검토중
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현재 한은의 중심통화지표는 민간보유현금에 요구불예금을 합한 통화(M1)
에다 만기 2년이상인 저축예금및 거주자 외화예금을 더한 총통화(M2)로서
지난해말 현재 총유동성(M3)의 26.3%에 불과했다.

지난 78년에는 77%에 달했던 M2비중이 이렇게 낮아진 까닭은 M2에 포함되지
않는 양도성예금증서(CD), 신탁계정, 특수은행및 제2금융권등 비통화 금융
기관의 예금등으로 시중자금이 몰렸기 때문이다.

이처럼 M2의 비중이 낮다보니 중앙은행의 통화관리효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중시통화지표의 변경내지는 보완논의가 분분했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통화지표의 변경은 지금도 여전히 논의만 될뿐 구체적인 행동으로
옮겨지지는 못하고 있다.

그동안 한은은 M2에 비해 M2 + CD나 M3가 속보성, 통제가능성등이 떨어지기
때문에 보조지표로 사용하면 된다고 말해왔다.

또한 이론적으로도 통화를 중시하는 통화학파와 신용을 강조하는 신용학파
의 의견대립이 있었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난 이같은 이유들 말고 속사정이 따로 있었다.

중심통화지표의 변경은 통화관리대상의 확대를 뜻하며 이는 제2금융권의
금융상품들에도 지급준비금을 부과하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이 문제는 제1, 제2금융권의 이해대림으로 연결되며 나아가 감독기관인
한은과 재경원의 "밥그릇싸움"으로까지 번질수 있다.

또 한가지 근본문제는 현재의 통화관리체제를 뜯어고치지 않고 그대로둔채
통화지표를 바꿔봐야 별로 의미가 없다는 점이다.

통화지표변경은 통화관리체제의 일부일뿐 더 중요한 것은 직접관리방식에서
금융시장동향을 반영하는 간접관리방식으로 바꾸는 일이라고 지적돼왔다.

그러나 간접관리수단인 재할인율 지급준비율 공개시장조작이 지나친 정책
금융부담 때문에 전혀 유명무실한 것이 우리의 금융현실이다.

비록 한편으로는 금융자율화가 추진되고 있고 몇몇 제도개선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중소기업지원을 위한 금융부담이 늘어나는등 문제해결이
쉽지않은 상황이다.

앞서 말한대로 이경식 한은총재의 발언내용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의 금융현실에서 당장 어떤 큰 변화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한은관계자들의 신중한 반응이 이같은 사정을 둣받침해주고 있다.

그렇지만 이총재의 통화지표변경 검토발언은 국제회의에서 중앙은행총재의
공식적인 문제제기라는 점에서, 그리고 시기적으로 OECD 가입을 앞두고 어떤
형식으로든 개선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나름대로 적지않은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우리경제의 세계화의 경랑에 휩쓸릴수 밖에 없는 마당에 통화관리체제도
예외일수 없는만큼 보다 전향적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개선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