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봉이라면 가련댁 아씨 말이지요? 그 아씨 내가 봐도 보통이
아니던데요"

마도파가 슬쩍 맞장구를 쳐주자 조씨가 더욱 희봉을 헐뜯었다.

"앞으로 두고 봐요.

이 집 재산이 다 여우 같은 그년의 친정집으로 빼돌려질 테니까"

"그런 줄 알면서 모두들 가만히 있어요? 무슨 조치를 취해야지"

마도파가 실눈을 뜨고 조씨의 표정을 살폈다.

"이 집에 그년을 당해낼 사람이 있어야죠. 그년이 살림을 도맡다시피
하고 있으니"

조씨의 말투에는 체념과 분통함이 함께 묻어 있었다.

"무슨 수가 있긴 한데"

마도파가 한 마디 흘리자 조씨가 바짝 다가 앉으며 그 비결을 가르쳐
달라고 보채었다.

"하지만 너무 끔찍한 방법이라서......"

마도파는 머뭇거리는 척해 보였다.

"내가 어떤 사례라도 할 테니까 그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네?"

"작은 마님 형편에 사례는 무슨 사례. 제가 사례를 바라고 이러는 것은
아니고 작은 마님을 돕고 싶은 마음에서"

마도파는 짐짓 선량한 표정을 지으며 조씨의 어깨를 두드려 주기까지
하였다.

"아니에요. 사례는 톡톡히 해야죠.

희봉이 년만 어떻게 되도록 하면 이 집 재산 중에서 가환이에게로
돌아올 상속 분이 있을 것 아닙니까.

그러면 나중에라도 사례를 충분히 해드릴 수 있죠"

"나중에요?"

마도파의 얼굴에 실망의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다.

조씨는 자기가 실수한 것을 알고 말을 고치느라 허둥대었다.

"아니, 나중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당장 사례금의 반을 선금으로
드릴 수 있어요.

그리고 나머지 반은 일이 성사되고 나서 드리도록 하지요"

"일이 성사되고 나면 언제 그런 약속을 했느냐고 시치미를 뗄 지
어떻게 알아요?"

마도파가 이런 식으로 나오자 조씨는 이제야 마도파가 본심을
드러내는구나 싶어 긴장을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일이 성사되리라는
기대감이 일었다.

그쯤 되니 조씨 마음에 욕심 한 가지가 더 생겼다.

"그게 의심스럽다면 내가 차용증서를 써 줄 게요.

그러면 되잖아요.

그리고 이왕 희봉 년을 처치하는 마당에 또 하나의 방해물을 처치해
주면 좋겠는데.

그러면 사례금은 두 배, 아니 세 배도 줄 수 있죠"

"또 하나의 방해물이라면?"

마도파는 짐작은 하면서도 모르는 척 반문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3월 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