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사성폐기물 관리업무를 한국원자력연구소에서 한국전력으로 이관키로 한
정부 방침에 원연 간부들이 반발, 집단보직사퇴서를 내는가 하면 타연구기관
종사자들도 동조하고 나서는등 반발이 확산되고 있다는 소식이다.

원연부설 원자력환경관리센터의 중견보직자 전원이 26일 일괄사표를 낸데
이어 전국과학기술노조도 투쟁결의대회 등 집단행동에 들어갔다고 한다.

원연측의 강력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총리실은 27일 예정대로 원자력위원회
에 "방사성폐기물 관리추진체제 조정안"을 상정, 통과시킴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원자력사업을 둘러싼 한전-원연간, 나아가서는 통산부-과기처간의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최근 갑자기 이같은 갈등이 악화된 것은 원자력
체제를 일원화하라는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정부가 방사성폐기물관리업무의
한전이관을 서두르면서부터다.

그간 한전과 원연측은 사사건건 마찰을 빚어온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만도 94년 원자로 설계기술이관을 둘러싸고 연구원들이 시위를
벌였고 95년에는 대북 경수로공급 주계약자선정과 원자로 설계전문회사
설립문제를 놓고 심한 갈등을 빚었었다.

때문에 양 기관의 갈등을 이대로 둔다면 진정한 원자력기술의 자립과
경쟁력확보를 기대하기 힘들다는 우려가 대두되기에 이르렀고 급기야 이같은
여론이 대통령의 구체적인 지시를 끌어냈다고 봐야 한다.

우리는 정부가 추진하는 원자력체제의 일원화가 잘만 되면 국력의 불필요한
낭비를 막고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리라 믿는다.

그러나 원자력사업의 일원화를 위해서는 원자력 행정체제의 일원화가
선행돼야 함을 강조하고자 한다.

지금처럼 행정체제가 통산부와 과기처로 이원화돼 있는 상태에서는 이제껏
보아온 것처럼 국가정책의 혼선과 행정력의 낭비를 피할 수 없다.

이번 경우만 해도 그렇다.

작년 10월 원자력법 시행령개정을 통해 원연이 정부의 위탁을 받아 방사성
폐기물 관리사업을 수행토록 한지 몇달도 안돼 이를 다시 한전에 이관하라고
하니 원연 측이 정부의 정책일관성 결여를 성토하고 나설 만도 하다.

지금처럼 과기처와 통산부가 자신들의 행정영역은 그대로 지키면서 하급
기관의 업무만 조정한다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는 없다.

방사성폐기물 관리사업은 방대한 원자력 행정체제의 한 분야일 뿐이다.

따라서 행정체제의 일원화 과정에서 큰 원칙만 정해진다면 저절로 해결될수
있는 성질의 것이다.

원연측도 집단행동으로 문제를 풀려 해선 안된다.

연구원들이 툭하면 연구실을 뛰쳐 나오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될수
없다.

지금은 대북 경수로 지원과 내년으로 다가온 원전시장 개방이 발등의 불이
되고 있는 상황이다.

지엽적인 문제로 전체 원자력사업에 차질이 빚어져서는 안된다.

원연의 기술자립의지와 한전의 사업의욕을 함께 북돋우는 방향에서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아야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