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나 집은 사두기만하면 돈이 됐었다.

자고나면 값이 올라있는게 땅이며 집이었다.

아파트분양권은 전매를 거듭하면서 프리미엄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땅도 사고난 바로 뒤 웃돈이 붙었다.

전국 땅값이 한달사이 평균 10%이상 뛰어올랐을 때도 있었다(89년3월).

서울 강남개발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70년대 초부터 4~5년의 주기를 두고
끊임없이 반복돼온 현상이었다.

모든 돈은 땅과 아파트로 몰리고 부동산은 투기의 대명사가 됐다.

부동산으로 돈 번 얘기는 실패의 사례를 찾기 어려운 "신화"였다.

투기바람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80년대말에는 급기야 "전국민의
투기꾼화"라는 말까지 매스컴에 등장했다.

돈되는 먹이감을 찾느라 나라안 곳곳을 휩쓸고 다니면서 광풍을 일으키던
투기꾼들은 일확천금을 노리고 금광을 찾아나서는 서부영화의 주인공들을
연상케 했다.

주택건설업계도 덩달아 떼돈을 벌었다.

땅에 말뚝만 박아도 아파트는 불티나게 팔려나갔다.

아파트분양은 가장 확실한 돈벌이 사업이었다.

그러나 신화의 이면에는 집없는 서민들을 향한 비수가 감추어져 있었다.

전세값이 단번에 50%나 올라가는 일이 다반사였다.

천정부지로 뛰는 전세값을 마련치 못해 목숨까지 버리는 사태도
잇따랐다.

하루가 다르게 올라가는 아파트값은 집없는 서민들이 아무리 허리띠를
졸라매도 영원히 내집을 마련할수 없다는 깊은 좌절로 몰아넣었다.

그것은 악몽이었다.

전세계약기간 1년에서 2년으로 연장, 1가구 2주택 중과세, 신도시개발
및 200만호 건설 등은 그래서 나왔다.

이 시절 분양가 규제, 토지공개념 도입, 소형주택 의무비율 준수 등
건설업에 대한 각종 규제는 온당한 것으로 여겨졌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올해 벽두 한국재계 28위이자 아파트건설업체의
대명사인 우성그룹이 무너졌다.

이후 지금까지 20여개의 중소건설업체들이 미분양의 덫에 걸려 쓰러졌다.

부도가 가장 많았다는 지난해 한달평균 12개가 무너졌으나 올해는
작년의 2배쯤 될것이라는게 업계의 관측이다.

이건 무얼 말하고 있는가.

전국 요지에 수십만평의 땅을 보유한 우성은 그동안 수없는 부도설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땅이 있어 결코 무너지지 않을 것으로 믿어져 왔다.

그러나 우성은 결국 그 땅때문에 쓰러졌다.

땅과 미분양아파트에 너무 많은 돈이 잠겨버린 것이다.

우성의 부도는 말하자면 "부동산신화의 끝"을 알리는 조종이었던
셈이다.

비정상의 신화시대가 끝났다면 이제 남은 것은 "정상"을 되찾는 일이다.

말뚝박으면 아파트팔리던 좋은 시절 덩치를 비정상적으로 불린 기업이
빠지는 거품을 감당하지 못해 쓰러지는 건 정상이다.

그러나 비현실적인 규제, 일시적인 자금난등으로 인한 경쟁력있는
건설업체의 부도는 정상이라 할수 없다.

견실한 하도급및 자재납품업체들의 연쇄도산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들 협력업체 직원들이 작업장을 나와 공사비와 자재대를 받으러
다니는 모습은 사회전체의 손실이다.

입주를 기다리는 서민들의 불안과 피해는 더 큰 문제다.

신화시대의 논리가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 지금 건설업계의 모습은
어떤가.

아파트는 지어도 팔리지 않고 팔릴만한 아파트를 지을 땅은 없다.

여기에 촘촘히 짠 그물처럼 규제의 망이 둘러쳐져 있다.

소형아파트 의무건설비율 규제, 분양가 억제, 아파트건설이 지연되고
있는 땅에 대한 비업무용부동산 판정과 중과세, 우성부도쇼크이후 조금씩
풀리고는 있지만 이런 것들이 그동안 건설업계의 숨통을 죄어왔다.

94년기준 GDP(국내총생산)에서 건설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1.4%.

그런데 비제조업이란 이유로 은행에서 돈을 빌릴때는 1%의 가산금리가
어김없이 붙는다.

건설업체어음은 재할인대상에서도 제외된다.

과도한 담보를 요구하는 금융관행도 계속되고 있다.

사채시장이 건설업체의 주요 자금줄이 되면서 금융비용은 늘어만
가고있다.

지난해 10월 삼익건설부도이후 사채시장에서의 건설어음 할인이자는
최고 월3.5%까지 올라갈 정도였다.

그마저도 어음할인이 쉽지않다.

이젠 달라져야 한다.

건설업은 한때 해외에서 달러를 벌어들여 국민경제발전과 압축성장의
젖줄을 마련한 주역이었다.

지금도 해외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 몇안되는 분야중의 하나이다.

그런 점에서 건설업을 정상으로 되돌리는 "부동산시장 바로세우기"가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이다.

키워드는 "시장기능회복"과 "경쟁력강화".

투기의 망령에 사로잡혀 있던 시절의, 그 시대에 옳았던 규제는 지금
과감히 푸는 것이 온당하다.

업계도 스스로 노다지의 꿈에서 벗어나야 한다.

이제는 신화의 시대가 끝났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