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현성일씨의 입국은 말그대로 극적이었다.

북한인의 망명 빈도가 갈수록 잦아지고 출신 계층도 점점 올라가 요즘마냥
그런 보도에 접하는 국민들이 때로 어리둥절할 지경이다.

최수봉 여인의 숨박꼭질, 추격자 같던 태권도 교관의 입국, 동시 망명에
실패했으니 끝났겠구나 추측되면 남편의 돌연 입국등 이번 잠비아-서울
연쇄 망명사건은 신기하다 못해 위장망명 의문, 드물게는 혹 당국의 조작
아닌가 하는 구시대적 의혹마저 연상케 할 정도다.

하나 그건 아니다.

고위간첩 이수근의 위장 망명때와는 20여년을 격해 상황이 엄청 뒤바뀌어
저들이 위장을 시도할 어떤 실익도 떠올리기 힘들고, 불리하면 불리했지
아무 타산도 안설 남측의 조작이란 더더욱 상상조차 할수 없다.

그렇다면 시베리아 벌목공들의 집단이탈로 요란하다가 좀 뜸한듯 하던
북한인의 탈출이 요즘 부쩍 잦아지며 그것도 장본인의 직급이나 직책은
물론 현직 총리의 사위에서 갈수록 당-정-군 최고위층의 2세라는 눈에 띄는
출신성분의 격상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우리는 이점에서 무엇보다 정부가 신중한 분석으로 국민의 이해를 도와야할
절실한 필요를 느낀다.

그래야 앞으로 늘면 늘었지 줄어들지 않을 이런 망명사태 앞에 국민의
지나친 불안이나 성급한 통일희망을 진정시키면서 미래에 차분히 대비하는
능력을 키운다고 본다.

뿐아니라 정부나 각 정당은 특히 총선의 와중에서 북한문제를 본의아니게
정략으로 이용해선 안될뿐 아니라 식량문제등 추호라도 그런 오해의 소지가
싹튼다면 그때그때 불식하고 넘어가는 쪽이 장기 안목에서 현명하고 유익
하다.

민족의 숙원인 통일사업 추진에 있어 일시적 또는 제한적 필요에 이끌려
사실을 왜곡하는 일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되며 기본전략의 일관성을
그르치는 일 또한 금물이 아닐수 없다.

단 1년여만 돌아봐도 후계체체, 경수로, 쌀지원, 대수해에 의한 식량부족
악화등 북한 내부 사정에 대한 갖가지 궁금증과 그에 대한 국내의 제각각의
추측은 혼란을 극할 정도였다.

게다가 그 적중률은 놀랍게도 형편없어 오히려 무당이 그중 으뜸이랄
정도였다.

특히 동서고금 선례없는 소위 혼령통치에 이르러선 누구나 상상의 한계를
탓할 따름이었지만 그럴수록 중요한 것은 그 원인의 바른 지각이다.

신비하다고 현혹되지 말고 저들이 밤낮 안가리고 꾸미는 꾀란 외부세계를
계속 놀라게 함으로써 대비를 혼란시키는 고도의 양동-기만 작전임을
알아차리는 일이다.

망명문제만 놓고도 제주도 어선의 의심투성이 월북 발표는 소위 성분좋은,
그래서 해외-남쪽 사정에 밝은 유력층 자녀들이 절망으로부터의 탈출에
앞장서는데 북한지도부가 경악한 나머지 새로 시도한 대응 아닌가 짐작도
간다.

그러나 이미 기울었다.

국경을 완전 봉쇄하지 않는한 산 사람의 탈출을 막는 일은 불가능하다.

이제 불시도발 경계에, 해외체재-여행 관민의 신변보호, 망명 입국증가,
길게는 난민수용과 통일 전단계 전략수립에 조용히 나설 시기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