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311) 제8부 아늑한 밤과 고요한 낮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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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옥이 보옥의 방으로 들어서자마자 마치 선승들끼리 선문선답을 하는
것처럼 보옥에게 물었다.
"보옥에게 묻노라. 지극히 귀한 것은 보배요,지극히 단단한 것은
옥인데, 그대에게 있어 귀한 것은 무엇이며 단단한 것은 무엇이뇨?"
난데없는 질문에 보옥이 어안이 벙벙하여 대답을 하지 못하자 대옥과
보채, 상운 들이 손뼉을 쳐가며 웃음보를 터뜨렸다.
"그것 하나도 얼른 대답을 못할 만큼 우둔하면서 무슨 참선이라도
한 것처럼 글을 짓고 그래요?"
아차, 어제 글을 쓴 종이를 대옥이 가져갔구나 하고 보옥이 책상 쪽을
쳐다보니 아니나다를까, 그 종이가 보이지 않았다.
어제 글을 지을 순간만 하여도 대단한 진리를 깨달은 것 같았는데,
지금 대옥으로부터 놀림을 당하고 나니 그 글이 쑥스럽게 여겨지기만
했다.
대옥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보옥 오빠의 글을 보면, "참으로 깨달아야 스스로 설 수 있는 경지에
이르리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것도 좋긴 하지만 이렇게 바꾸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요"
남의 글을 바꾸다니. 보옥은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으나 대옥의 시재가
대단하다는 것을 아는지라 어떻게 짓나 보자 하고 가만히 있었다.
"스스로 설 수 있다는 망상마저 깨뜨릴 때 비로소 청정한 깨달음에
이르리라"
대옥의 시를 듣자 보채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감탄을 하였다.
"그쯤 돼야 뭘 깨달았다고 할 수 있지. 옛날 남종파 오조 홍인 선사가
후계자를 정하고자 제자들에게 게문을 하나씩 짓도록 하였지.
신수라는 상좌가 먼저 게문을 지었지."
이 몸은 보리수나무, 마음은 맑은 거울 같아라. 시시로 부지런히 닦아서
티끌 하나 묻지 않게 하리"
그런데 불목하니로 부엌에서 쌀을 찧고 있던 혜능이 그 게문을 듣고는,
그럴 듯하긴 하지만 깨달음이 없는 글이구나, 하고 이런 게문을 지었지.
"보리수는 원래 나무가 아니요, 맑은 거울도 역시 거울이 아니니,
본디 없는 물건에 어찌 티끌이 묻을손가"
혜능의 게문을 들은 홍인 선사가 마침내 그를 후계자로 삼아 의발을
전수해주었지.
그래서 육조 혜능이 된 거지. 보옥 도련님이 지은 게문을 대옥이 뒤집은
것을 보니 신수와 혜능의 경우가 생각나서 해본 소리야"
보채가 하는 말을 들으며, 보채가 언제 저런 것까지 알게 되었나 하고
보옥은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6일자).
것처럼 보옥에게 물었다.
"보옥에게 묻노라. 지극히 귀한 것은 보배요,지극히 단단한 것은
옥인데, 그대에게 있어 귀한 것은 무엇이며 단단한 것은 무엇이뇨?"
난데없는 질문에 보옥이 어안이 벙벙하여 대답을 하지 못하자 대옥과
보채, 상운 들이 손뼉을 쳐가며 웃음보를 터뜨렸다.
"그것 하나도 얼른 대답을 못할 만큼 우둔하면서 무슨 참선이라도
한 것처럼 글을 짓고 그래요?"
아차, 어제 글을 쓴 종이를 대옥이 가져갔구나 하고 보옥이 책상 쪽을
쳐다보니 아니나다를까, 그 종이가 보이지 않았다.
어제 글을 지을 순간만 하여도 대단한 진리를 깨달은 것 같았는데,
지금 대옥으로부터 놀림을 당하고 나니 그 글이 쑥스럽게 여겨지기만
했다.
대옥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보옥 오빠의 글을 보면, "참으로 깨달아야 스스로 설 수 있는 경지에
이르리라"는 구절이 있는데, 그것도 좋긴 하지만 이렇게 바꾸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요"
남의 글을 바꾸다니. 보옥은 은근히 자존심이 상했으나 대옥의 시재가
대단하다는 것을 아는지라 어떻게 짓나 보자 하고 가만히 있었다.
"스스로 설 수 있다는 망상마저 깨뜨릴 때 비로소 청정한 깨달음에
이르리라"
대옥의 시를 듣자 보채가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감탄을 하였다.
"그쯤 돼야 뭘 깨달았다고 할 수 있지. 옛날 남종파 오조 홍인 선사가
후계자를 정하고자 제자들에게 게문을 하나씩 짓도록 하였지.
신수라는 상좌가 먼저 게문을 지었지."
이 몸은 보리수나무, 마음은 맑은 거울 같아라. 시시로 부지런히 닦아서
티끌 하나 묻지 않게 하리"
그런데 불목하니로 부엌에서 쌀을 찧고 있던 혜능이 그 게문을 듣고는,
그럴 듯하긴 하지만 깨달음이 없는 글이구나, 하고 이런 게문을 지었지.
"보리수는 원래 나무가 아니요, 맑은 거울도 역시 거울이 아니니,
본디 없는 물건에 어찌 티끌이 묻을손가"
혜능의 게문을 들은 홍인 선사가 마침내 그를 후계자로 삼아 의발을
전수해주었지.
그래서 육조 혜능이 된 거지. 보옥 도련님이 지은 게문을 대옥이 뒤집은
것을 보니 신수와 혜능의 경우가 생각나서 해본 소리야"
보채가 하는 말을 들으며, 보채가 언제 저런 것까지 알게 되었나 하고
보옥은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