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일을 놓고 그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는 경우를 자주 본다.

그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게지만 무엇보다도 절차와 형식이 잘 갖추어졌을
때 내용 역시 후한 평가를 받게 되고, 절차와 형식이 빈약하면 내용 역시
무시당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점은 "문화양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의 경우처럼 문화양식을 잘 활용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스모의 경우를 보면 경기의 내용은 아주 단순하다.

한 선수가 넘어지거나 원 밖으로 밀려나면 끝나는 경기다.

그런데 스모가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있는 것은 한경기르를 치룰 때마다
그들이 보여주는 형식과 그 형식에 담겨있는 일본의 전통적인 문화양식
때문이다.

내용은 별 볼일 없어도 그럴듯하게 포장하는 "과정의 미학"을 통해
일본인들은 문호적, 정신적인 일치감과 민족적인 동질감을 만끽한다.

우리나레에서는 평범하게 지나치는 성년의 날을 국가적인 행사로 치르는
것도 마찬가지다.

성년의 날을 맞은 당사자들은 기모노와 같은 전통 의상을 화려하게 차려
입고 성년의 식을 치른다.

그래서 일본의 전통의상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날 중에 성년의 날이
속한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스모와 다르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가.

언제부턴가 우리의 생활에서 "축제"가 사라졌다.

전 국민이 문화적인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우리만의 그 무엇"이 얼른
생각하지 않는다.

더구나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기껏해야 설날과 추석에 한복을 입어보는
일이 전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민속씨름이 전통양식을 이어오고 있지만, 씨름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느낌이다.

이제 몇 달 후면 총선거를 통해 새로운 의원들이 선출되고 국회가 열릴
것이다.

이때 새로운 국회로 동원하는 의원들이 첫 날 한복을 입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송년파티나 청와대 신녀하례회 때, 신년 첫 국무회의 때 대통령을
비롯해 전 국무위원이 한복을 입는 것이다.

3부 요인이 참석하는 신년 음악회에 한복을 입어야만 입장할 수 있도록
하는 일도 생각해볼 일이다.

이제부터는 바로 우리의 것, 우리의 문화양식을 되찾아야할 시기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