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멀아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세월이 길수록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꿈 많고 이상도 높았던 고교시절.

그때 그 시절이 지금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아무런 편견도 없었고,조건도 필요하지 않았던 시절.

그 때에는 친구들과도 우정과 의리 만으로도 가슴이 따뜻해졌었다.

그때 맺은 인연이 한 세대가 지난 지금에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아무런 허물도 없다.

일상에서 받는 힘겨움도 그들과 함께 하면 어느샌가 잊혀지고, 그 시절로
다시 돌아갈 수 있어 그냥 좋다.

피붙이도 아니고, 살아가는 방법도 다르고, 조석으로 얼굴을 대하는
것도 아닌데 무엇이 우리들을 이렇게 묶어 놓았는지. 이래서 사람인가
보다.

경상도 사나이의 투박스러움을 불혹을 넘긴 나이에도 표본처럼 간직하고
있는 우리는 대구 사학의 한 기둥인 계성고등학교를 58회에 졸업한
동기들이다.

지난 58회 모임을 만들게 되었다.

모임의 이름도 우리의 소중한 만남을 무덤까지 가져 가자는 뜻에서
영우회라 명명했다.

매월 둘째주 수요일마다 정기적으로 모임을갖는 영우회 멤버로는
권순환(동아실업 대표), 최영욱(세명정형외과 원장), 김정국(신신기획
대표), 김창곤(팔공골프 대표), 장승하(경북체인 상무), 박배윤(자영업),
김영문(대한중석 경북총판 대표) 등이 있으며 필자가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우리 모임이 다른 모임과 다른 것은 아버지의 우정이 그대로 2세들에게
까지 이어져 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들 연배가 서로 비슷하니까 2세들도 그만그만한 나이들로 연배가
서로 비슷하다.

가족동반 모임으로 서로 만나는 횟수가 잦아지다 보니 이제는 아이들
끼리 따로 만나려고 하는 정도이다.

우리 자녀들 나이에 만난 우리들이 부모가 되어서도 변함없이 정을
나누는 모습을 자식들에게 보여줌으로써,요즘같이 혼탁한 세태에 우정
무엇인가를 현실로 비춰주는 산교육을 하고 있다는 보람 또한 크다.

우리 영우회는 지금까지 회비로 4천만원 이상을 적립하고 있으며
이를 재원으로 회원 자녀의 고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학자금 전액을
한 두번 정도 부부동반 모임을 갖고 있으나 회비가 좀 더 적립되면
대구 근교에 주말농장을 구입하여 회원 가족 전체가 같이 즐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자 하는 원대한 계획도 갖고 있다.

회원들이 지금같이 착실하게 회비를 내주면 머지않아 꿈이 실현될 듯도
하다.

그동안 앞만 바라보며 치열하게 살아온 삶.

우리들이 각자 자리한 곳에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오늘의 위치를
다질 수 있었던 것은 학창시절 선생님들의 지도와 친구들과의 교류를
통해 확고히 다져졌던 삶에 대한 가치관때문이 아닌가 싶다.

이제는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해 주고, 우리의 꿈을 키울 수 있게 해
주었던 정든 모교를 위해, 후배들을 위해 현실적으로 보탬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정은 변함없지만 서로의 몸이 예전과 같지 못하다는
것을 피부로 느끼고 있다.

모두들 건강에 신경을 써야 할 때가 되었다.

이제 서로의 건강을 위해 앞으로는 두주불사를 자랑하지 말자는 부탁을
회원 모두에게 전하고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