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 < 연세대 명예교수 >

불행하게도 우리는 광복후 50년동안에 두차례의 쿠데타를 겪어야 했다.

5.16쿠데타는 권력에 의한 압력때문에 그대로 역사속에 수용된 셈이
되었다.

그 사실을 지켜 본 신군부세력이 제2의 쿠데타를 일으켰다.

생각이 있고 나라를 걱정하는 국민들은 도저히 전두환정권을 지지할수
없었고 뜻이 있는 사람들은 전두환씨를 대통령이라고 생각한 바가 없었을
정도였다.

그래도 그 수치스러운 사실을 후일의 역사적 심판에 맡기려고 했다.

과거를 위해 지나치게 큰 상처를 국민생활에 남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민선대통령이라고 자부하던 노태우씨의 비리가 드러나기 시작했고,
광주 민주화운동에 치른 희생이 너무 컸기 때문에 그 진실과 고귀한 희생을
그대로 묻어두기에는 국민들의 정의감과 애국심이 더이상 침묵을 지킬수
없게 되었다.

대통령이나 집권층의 시기선택과 방법이 어떠했든 간에 이제는 인위적으로
라도 역사를 바로 세워야 한다는 의무감과 당위성을 외면할 수는 없게
되었다.

우리는 어떤 한두 개인을 증오해서가 아니다.

그들의 법적인 처벌은 불가피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가 전직 대통령이었던 두 사람에게 국민전체적인 채찍을 가하는
것은 나라가 더 소중하며 후세의 국민들에게 우리에게 주어진 떳떳한 권리를
포기할수 없었기 때문이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채찍은 받아야 한다.

그들이 대통령들이었기 때문에 회피해서도 안되고 용서를 구하는 것도
한계를 넘어선 결과가 되어 버렸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되는 것은 누가 먼저 돌을 던질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회사원이 돌을 들고 보니 자신들이 소속된 회사의 총수가 연루되어 있지
않은가.

종교인들이 돌을 들고 보니 우리 교단의 스님들과 목사들이 같은 자리에
앉아 있지 않았는가.

필자와 같은 지성인이 돌을 들어 보면 수많은 친구들과 젊은이들에게
가르침을 주던 동료교수들이 전두환정권을 옹호, 지지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나지 않았는가.

그러나 우리 모두가 직.간접적으로 부끄러운 역사의 자리에 앉아 있었다고
해서 더 많은 젊은 세대앞에 그 치부를 가려두자고는 할수없는 노릇이
아닌가.

적어도 백년이상은 기억에 남을 반민주적이며 비애국적인 역사적 사건을
나와는 상관이 없다고 눈감아 둘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 공통된 속죄의 방법은 무엇인가.

우리 모두가, 특히 민족과 국가를 사랑하는 군인들이 앞으로는 어떠한
경우에도 군복을 입은채로 정치에 참여하는 쿠데타에 관해 생각하지
못하도록 절대로 배격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이다.

쿠데타는 가장 창피스러운 후진국가의 모습임을 자인해야 하겠다.

이에 못지않게 소중한 것은 적어도 대학을 나온 지성인들이 쿠데타 정권에
동조하거나 가담하는 굴욕적이며 반역사적인 과오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어떤 처지에 놓인다고 하더라도 광주사태와 같은 반인도적이며
국민들의 생명과 삶을 정권의 수단이나 방편으로 삼는 비인간적 처사를
배격할수 있어야 한다.

정치가 국민을 위해 있는것이지 국민들이 정치적 수단과 방편으로 퇴락할
수는 없는 것이다.

12.12나 5.18이 쿠데타냐 아니냐를 묻는 것은 법적 증거의 문제이지 국민적
양심의 과제는 아니다.

6.25가 대한민국의 북침이라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궤변에 속하는 것이다.

역사가 증명하기도 했으려니와 역사적 사건의 전말을 보는 우리에게는
새삼 문제가 될수없는 일이다.

그래서 대통령과 집권층에 요청하는 것은 애국적인 판단과 민족사를 위한
선택을 해달라는 것이다.

진실에서만 진실의 열매를 거둘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