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바뀌면서 으레 주고받는 말 중에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는 말이 가장
많다.

만나는 사람마다.

복을 주고받으니 만약 "복"이라는 것이 유형의 물건이었다면 누구나 엄청난
부자가 되었을 것이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양보하지 안으려는 요즘의 인심으로 보자면 그래서
"복"이 무형의 덕담인 것이 다행스럽기도 하고, 그렇기 때문에 그처럼 관대
하게 베푸는 것은 아닌가 하는 씁쓸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서울의 청량리에 소위 "588"이라는 동네가 있다.

그 동네에 조금 색다른 사람이 한 사람 살고 있다.

다일공동체 대표 최일도목사.

그는 벌써 7년째 그곳 588에서 갈곳 없고, 기댈 곳 없는 사람들에게 밥지어
주는 일을 해오고 있다.

그에게서 따뜻한 밥을 얻어먹는 사람들은 주로 걸식 노인이나 병자들로
그대로 두면 굶어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가 이 일을 시작한 것은 우연히 청량리역 광장 모퉁이에 굶주림으로
쓰러져 있는 노인을 보고 무조건 이들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에서다.

처음에는 그곳의 포주와 아가씨들로부터 영업이 안된다는 이유로 쫓겨나고
멱살도 많이 잡혔지만 지금은 오히려 가장 큰 도움을 받게 되었는데, 무엇
보다 그가 아무런 욕심없이 이일을 하고 있다는 진심을 알게 되면서였다.

그는 이 일을 통해 아무 이익도 얻지 못한다.

오히려 자신의 사재를 도두 털었을 뿐만 아니라 아내와 아이까지도 자기
희생을 감수하며 최목사의 일을 돕고 있다.

우리 사회에는 최목사와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얼마전 많은 이들의 가슴을 적시고 명을 다한 장기려 박사, 순천의 SOS
마을에서 자신의 일생을 고아들의 어머니로 바친 이름없는 여성들 등 그들은
다만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이다.

이처럼 드러나지 않고 아무런 욕심과 이익을 도모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형의 덕담이지만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하고 싶다.

바로 이들이 우리사회가 앞으로 걸어가게 하는 큰 힘이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