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30일자) 해 넘기는 남북해빙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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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핏줄이면서 이렇게도 말이 안 통할수 있나 하는 탄식이 절로 나올만큼
남북관계 개선에 별무진전, 안타깝게 보낸 한해가 올 95년이었다.
김일성사후 이제나 저제나 무언가 좋은 방향의 변화가 오리라는 높았던
기대에 비해 해가 두번째 바뀌는 사이 진행된 반도 내부동향은 너무 엉뚱한
방향이었다.
물론 남북관계란 쌍무적이어서 공이든 과든 어느 한쪽에만 떠넘김은 온당치
않다.
나아가 서로간에 증오의 깊이를 더해가는 근본원인을 객관적으로 구명하고
변하지 않으면서 바뀌는 해에만 기대를 거는 것은 안일한 자세다.
성사직전에 이르렀던 남북 정상회담 개최가 김주석의 죽음으로 무산됐을뿐
아니라 기대와는 반대로 양측간의 거리가 더 멀어진 원인은 과연 뭔가.
한마디로 남쪽보다 북쪽의 원인제공이 더 크다는 세계 여론을 빙자하면
편하다.
더구나 공산권 와해로 소수나마 북측의 논리에 동조하던 세력도 사실상
국제 무대에서 사라진 상황에서 불신 심화와 파국의 모든 책임이 북측에
있다고 하는 것으로 면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따져보면 그래서 남이 얻을 소득이 과연 있는가.
비교우위 평가 하나로 반기고 만족하던 단계는 이미 지났다.
이제는 실익, 더 정확하게 쌍방에 배분되는 실리를 계산해서 생각하며
행동해야 할 단계에 들어 섰음을 모두 통촉해야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김의 사망에 걸었던 기대부터가 크고 성급했다.
아무리 1인 체제였다 해도 인구 2,000여만을 포용, 20세기 후반세기를
지탱한 정치집단이라면 부흥이 됐건 붕괴가 됐건 근본적 변화모색에 시간이
소요됨은 당연하다고 보았어야 옳다.
김의 사후 음.양, 직.간접으로 남측의 조급한 내심, 좀더 솔직히 북이 곧
자멸하리라는 기대가 북측에 감지됐을 경우 그들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남측은 통찰을 했어야 옳았다.
이 점에서 역지사지의 마음자세가 필요했다.
설령 이러한 남측의 자기 성찰이 있다고 해도 근년 북한당국이 보인 사고
방식과 행동양식의 내향성-폐쇄성-반시대성 평가에는 하등 가감의 여지가
없다.
가령 왜 조문을 막았느냐는 반발만 해도 잠시 그 오랜 반목을 그들 스스로
떠올렸다면 어거지란 자각이 이내 들었으려니와 가깝게는 쌀을 원조받는
과정에서 북당국이 취한 언행은 한마디로 미성년자의 사고수준이었다.
며칠전 불쑥 송환한 어부 납치건만 해도 수십년 써먹은 대남전략에 달라
지고 개선된 구석이란 없다.
모처럼 판문점통로를 활용할 양이면, 어차피 쌀 추가 수원에 뜻이 있다면
미군만 상대한 모양세는 이만저만 졸렬한 것이 아니다.
다시 골육상쟁을 벌여 이 민족의 운명을 몇세기 후퇴시킬 오기가 아니라면
새해에는 남북 관계자들 모두가 변하고 성숙해야 한다.
레바논 보스니아 북아일랜등 지구촌 여러곳 이인종간의 묵은 대립이 화해를
찾는 때에 통일은 차차 하더라도 최소한 추한 형제 갈등만은 더 이상
내보이지 말아야 체면이 조금은 산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30일자).
남북관계 개선에 별무진전, 안타깝게 보낸 한해가 올 95년이었다.
김일성사후 이제나 저제나 무언가 좋은 방향의 변화가 오리라는 높았던
기대에 비해 해가 두번째 바뀌는 사이 진행된 반도 내부동향은 너무 엉뚱한
방향이었다.
물론 남북관계란 쌍무적이어서 공이든 과든 어느 한쪽에만 떠넘김은 온당치
않다.
나아가 서로간에 증오의 깊이를 더해가는 근본원인을 객관적으로 구명하고
변하지 않으면서 바뀌는 해에만 기대를 거는 것은 안일한 자세다.
성사직전에 이르렀던 남북 정상회담 개최가 김주석의 죽음으로 무산됐을뿐
아니라 기대와는 반대로 양측간의 거리가 더 멀어진 원인은 과연 뭔가.
한마디로 남쪽보다 북쪽의 원인제공이 더 크다는 세계 여론을 빙자하면
편하다.
더구나 공산권 와해로 소수나마 북측의 논리에 동조하던 세력도 사실상
국제 무대에서 사라진 상황에서 불신 심화와 파국의 모든 책임이 북측에
있다고 하는 것으로 면책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따져보면 그래서 남이 얻을 소득이 과연 있는가.
비교우위 평가 하나로 반기고 만족하던 단계는 이미 지났다.
이제는 실익, 더 정확하게 쌍방에 배분되는 실리를 계산해서 생각하며
행동해야 할 단계에 들어 섰음을 모두 통촉해야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김의 사망에 걸었던 기대부터가 크고 성급했다.
아무리 1인 체제였다 해도 인구 2,000여만을 포용, 20세기 후반세기를
지탱한 정치집단이라면 부흥이 됐건 붕괴가 됐건 근본적 변화모색에 시간이
소요됨은 당연하다고 보았어야 옳다.
김의 사후 음.양, 직.간접으로 남측의 조급한 내심, 좀더 솔직히 북이 곧
자멸하리라는 기대가 북측에 감지됐을 경우 그들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남측은 통찰을 했어야 옳았다.
이 점에서 역지사지의 마음자세가 필요했다.
설령 이러한 남측의 자기 성찰이 있다고 해도 근년 북한당국이 보인 사고
방식과 행동양식의 내향성-폐쇄성-반시대성 평가에는 하등 가감의 여지가
없다.
가령 왜 조문을 막았느냐는 반발만 해도 잠시 그 오랜 반목을 그들 스스로
떠올렸다면 어거지란 자각이 이내 들었으려니와 가깝게는 쌀을 원조받는
과정에서 북당국이 취한 언행은 한마디로 미성년자의 사고수준이었다.
며칠전 불쑥 송환한 어부 납치건만 해도 수십년 써먹은 대남전략에 달라
지고 개선된 구석이란 없다.
모처럼 판문점통로를 활용할 양이면, 어차피 쌀 추가 수원에 뜻이 있다면
미군만 상대한 모양세는 이만저만 졸렬한 것이 아니다.
다시 골육상쟁을 벌여 이 민족의 운명을 몇세기 후퇴시킬 오기가 아니라면
새해에는 남북 관계자들 모두가 변하고 성숙해야 한다.
레바논 보스니아 북아일랜등 지구촌 여러곳 이인종간의 묵은 대립이 화해를
찾는 때에 통일은 차차 하더라도 최소한 추한 형제 갈등만은 더 이상
내보이지 말아야 체면이 조금은 산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3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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