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한 사이는 누구고 먼 사이는 누구예요? 그리고 먼저 사귄 사람은
누구고 후에 사귄 사람은 누구예요?"

대옥이 조금 마음이 풀어진 표정으로 보옥에게 물었다.

"친한 사이는 바로 대옥 누이고 먼 사이는 보채지. 대옥 누이는 고모의
딸이고 보채는 이모의 딸이니 아무래도 고모의 딸이고 보채는 이모의
딸이니 아무래도 고모의 딸이 더 가까운 사이가 아니겠어?

그리고 먼저 사귄 사람 역시 대옥 누이지, 대옥 누이고 보채보다 먼저
와서 나하고 지냈으니 말이야"

"흥, 오빠, 말은 그럴 듯하게 잘 하네"

대옥이 콧방귀를 뀌는 시늉을 하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아진 것이
틀림없었다.

대옥이 보옥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아까 입고 있던 검정 여우털 외투는
어떻게 하였느냐고 물었다.

"대옥 누이가 화를 내고 짜증을 부리니 속에서 불이 나 견딜 수가
있어야지. 그래 저쪽에 벗어두고 왔지"

"날이 이리 추운데 감기라도 들면 어떻해요"

자기를 걱정해주는 대옥으로 인하여 보옥은 얼굴이 활짝 펴졌다.

대옥의 마음만 풀린다면야 감기는 열번이나 들어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대옥은 화를 낼때는 차갑기 그지없다가도 화가 풀리면 다정하기
그지없는 모습으로 변하였는데,거기에 따라 보옥은 열이 올랐다가
내렸다가 하는 셈이었다.

보옥과 대옥이 서로 따뜻한 눈빛을 주고 받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을때,
상운이 웃는 얼굴로 방으로 들어오더니 눈을 곱게 흘기며 말했다.

"보옥 오빠, 나의 좋은 오빠, 어쩌면 이럴수 있어요?

대옥 언니하고 날마다 같이 놀며 지내면서, 모처럼 놀러온 나하고는
말상대도 하지 않으려 하니 서운하기 짝이 없네요"

보옥은 뭐라 변명할 말을 찾지 못하고 머쓱한 표정만 짓고 있었다.

여자들 사이에서 노는 일이 이렇게 피곤한데도 여전히 그 언저리를
떠나지 못하고 있으니 보옥 스스로 생각해도 한심한 일이었다.

"나의 좋은 오빠? 아이구 간지러워"

대옥이 상운의 말투를 흉태내며 피식 웃었다.

이러다가는 상운과 대옥 사이에 말싸움이 붙을 판이었다.

"그렇게 남의 말투를 흉내내며 놀리면 어떻해?"

보옥이 슬쩍 대옥을 나무람으로써 그 사태를 수습하려 하였으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대옥 언니는 남의 흠을 잡아내는 데는 여우 같다니까.

"뭐라구? 혀를 가지고 있다고 함부로 놀려?"

대옥이 상운에게 몸으로 대어들 자세를 취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