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산부가 새해부터 시행키 위해 마련한"발전설비 일원화 해제안"은
말이 "해제"일뿐 한국중공업의 독점공급권유지 쪽에만 무게가 실려
있어 발전설비부문의 경쟁도입이라는 당초의 정책목표가 크게 후퇴한
감을 준다.

통산부안의 골자는 지금까지 한중이 독점 공급해온 발전설비 시장을
모든 국내 업체에 개방하되 원자력발전설비와 80만 급 이상의 화력발전설비
부문에서는 한중의 기존 독점공급권을 그대로 유지시킨다는 것이다.

지난 90년 한중의 경영정상화를 위해 마련된 발전설비공급 일원화조치가
내년초부터 해제되는 것은 기정사실이었지만 해제범위에 원전설비와
대형 화전설비를 포함시키느냐는 문제를 두고 그동안 정부의 고민이
컸던 것이 사실이다.

정부는 이 문제를 결국 "경쟁 배제"로 결론짓고 금주중 산업정책심의회
의결을 거쳐 내년부터 시행키로 한 것이다.

원전의 경우 기술습득 기간이 긴데다 대규모 시설투자가 필요하고
80만 급 화전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건설되는만큼 당분간 한중의
독점공급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정부측 설명이다.

그러나 우루과이라운드 정부조달협정에 따른 발전설비시장의 전면
대외 개방이 1년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서 국내 기업들에 조차 시장참입을
제한하는 것은 납득키 어려운 처사가 아닐수 없다.

발전설비 업체들로서는 원전의 경우 건설실적이 앞으로의 수주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국내 시장이 개방되기 전에 서둘러
실적을 쌓아야하는 절박한 상황이다.

또 나날이 규모가 커지고 있는 동남아지역의 발전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도 국내 실적을 바탕으로 한 경쟁력 확보가 시급한 실정이다.

국내 발전설비업체들은 그간 일원화 해제에 대비해 외국 회사와
기술을 제휴하여 업체별로 많게는 수천억원,적게는 수백억원의 대규모
투자를 단행해오고 있다.

업계의 이같은 노력에 힘입어 일부 업체는 이미 본격적으로 해외
수주활동에도 나설만큼 높은 기술수준과 탄탄한 생산기반을 자랑하고
있다.

때문에 정부시책만 믿고 시장참여를 서둘러온 이들 민간업체들이
정부의 경쟁제한결정에 크게 반발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오는 98년 이후 한중 민영화를 앞두고 있는 시점에서 정부가 내놓은
알맹이 빠진 발전설비일원화 해제안은 국내업계의 현실을 무시한채
한중의 경영정상화만을 생각한 편향적 정책결정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한중이 민영화될 때 이를 인수하는 특정기업에 대한 특혜성
시비가 일 것을 생각하면 더더욱 그렇다.

기업경영의 창의성과 경쟁력을 강화시킨다는 목적을 띤 공기업의
민영화 추진과정이 절차의 투명성과 민주성을 갖추지 못할 때 나타날수
있는 부작용을 바로 이번 발전설비일원화 해제안에서 확인할수 있다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허울좋은 "해제"뒤에 본래의 취지와는 다른 의도가 숨어 있지 않나
하는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도 정부는 이번 기회에 발전설비시장
참여의 문을 활짝 열어주는 것이 옳다고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