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의 인생살이 풀코스를 지켜보며 하루를 여닫는 병원.

"경희의료원문학회"는 죽음 질병과 맞딱뜨리면서 살아가는 병원종사자들이
모여 지난 89년9월5일 창립한 순수직장문학서클이다.

글읽기 글쓰기 등 문학작업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동료간에 친교를 다지고
나아가 삶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것이 개인적으로도 보람있는 일이다.

원래 병원이라는 곳은 30여개의 직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복잡한 집단인데, 문학회는 그러한 다양한 사람들이 오직 "문학을 좋아
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서클이라는 점에서 특이하다.

우리회원은 장환일 신경정신과교수 배종우 소아과교수 김여갑 구강외과
교수 김창환 한방침구과교수 오건영 연구개발실장 심규해 관리부장 박수영
인사과장 문혜순 수간호사 신현준 약제과계장 최승완 홍보계장 김명호
치료방사선과기사 김익화 경희대부속병원부속실장 정용엽 한방병원부속실
계장(문학회회장) 등 총26명이다.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행정직원 경비 세탁부 의료기사업무보조원
등 병원내의 전직종이 어울려 문학활동을 벌이고 있다.

매년 가을에 개최하는 시화전은 문학회의 대표적인 행사이다.

프로작가가 아니라서 쑥스럽다고 말하지만 회원들이 생활하면서 틈틈이
적어놓은 소중한 시들을 손수 그린 밑그림에 적어 전시해 보이는 것은
행복한 일이 아닐수 없다.

병고와 싸우는 환자와 보호자들에게 읽을 거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뜻깊은 일이기도 하다.

또한 연말에는 연하장을 직접 제작,판매해 적은 돈이지만 어려운 환자들의
치료비에 보태주기도 한다.

그리고 봄 가을 좋은 날에는 회원들끼리 또는 가족동반으로 문학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강원도 철원 깊은 산골짜기에서 알밤을 구우며 "오빠생각"을 부르며
즉석백일장을 열기도 한다.

무엇보다도 작가를 초대해 동행하는 문학여행은 회원들에게 문학과 삶에
대한 폭을 넓혀주는 좋은 경험이 된다.

92년에는 조병화시인의 생가를 찾아 그분의 작품세계와 인생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고 93년에는 강인봉시인과 동행해 유서깊은 선운사를
둘러보기도 했다.

젖어있는 가슴으로 세상살이를 한다는 것, 아름다운 장조로 살아보고
싶다는 소망을 가진다는 것은 요즘같은 세상에서 웬지 부담스럽고 많이
손해보는 일인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경희의료원문학회는 이 척박하고 억억거리는 세상모습에도
불구하고 문학활동을 통해 자신들의 소박한 삶을 깨끗하게가꿔 가고자
하는 꿈이 있다.

내년쯤에는 그동안 회원들이 발표한 1백여편의 시를 모아 한권의 시집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삶은 문학이라고들 하는데...비개인 정오의 초겨울 하늘처럼 그 어설픈
꿈이나마 내다버리지 않고 영원히 그렇게 살아갔으면 좋겠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