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국민들이 보지 않았으면 좋았을 꼴을 어제 기어코 보고야 말았다.

불과 3년전까지 만방에 국가를 대표하고 서슬 푸르게 나라를 호령하며
국민에게 존경을 요구하는 자리에 있던 한 전직 대통령이 미결수 번호의
수의를 입고 법대앞에 조아린 모습을 지켜 보았다.

좋은데 써야 할 "역사적"이란 수식을 이 최악의 경우에 써야 하는 괴로움은
노태우씨 본인과 측근, 일반국민 못지 않게 언론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이런 일이 되풀이돼선 안된다는 요청 하나만으로도 역사적 사건이란
평가는 피할수 없다.

다만 있어선 안될 이런 장면이 한두차례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수개월을 두고 주기적으로 재연될 수밖에 없는 사정이어서, 후세를 경계
한다는 순기능 외에 직.간접적인 역기능과 부작용 또한 적지 않으리라는데
문제가 있고 이를 최소화하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미 내란죄에 수뢰혐의로 구속, 조사를 받고있는 그 전임자 전두환씨의
첫 공판이 불과 며칠뒤로 예정돼 있느니 만큼 짧아도 앞으로 수개월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공판이 번갈아 가며 내외의 시선을 끌수 밖에 없게 돼있다.

이제 진실발견과 법리적용 양형등 재판 내적사항은 사직당국의 전담이라
하더라도 그밖에 행정당국 국민일반이 재판진행과 관련, 유의하고 협조해야
할 일은 한두가지가 아닐줄 안다.

생각컨대 전직 대통령 관련 사건들은 피고의 비중이나 혐의내용 면에서나
여느 형사사건과도 비교가 안된다.

따라서 앞으로 재판의 순조로운 진행, 원만한 사후마무리 여부는 민주
한국의 역량을 평가하고 국운도약의 한계를 예측함에 있어 중요한 척도다.

언론에 비친 각국 조야의 반응에 매달리지 않더라도 법위에 군림하던 전직
대통령을, 그것도 하나도 아닌 2인을 거의 동시에 구속 기소한다는 사실
하나로 이미 한국인의 역동성을 과시한 것이며, 그 하나로 가히 역사적이다.

한마디로 권력에의 무조건적 맹종이라는 후진적 의식구조에서 벗어나
법앞에 만인이 평등하다는 근대적 사고가 국민 법감정에 수용되지 않고는
불가능한, 한국 정치사상 일대 사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제기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유종의 미를 위해선 이제부터가 중요하다.

합리적인 심리는 물론이지만 방청 취재등 정내외의 질서유지에 관계당국은
물론 일반시민이 보여 줘야할 끈기와 성숙성은 중요하다.

특히 재판부나 언론은 국민의 인기영합이나 센세이션이 문제가 아니라
향후 참다운 민주국가 역량 유무를 이번 세계인의 환시아래 증명해 보인다는
사명감으로 각자의 역할을 진지한 자세로 수행해야 한다.

아마도 내년중에 이 두 사건을 필요에 따라 병합심리해 가며 원숙처리하는
데 성공한다면 쿠데타 없는 헌정, 진정한 민주주의 정착은 물론 민주통일의
길도 트일 것이다.

그러나 정치보복 지역대립, 총선의 혼란으로 이어진다면 만화의 씨가 됨을
유의할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