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반세기 한국인들이 겪은 물심양면의 변화는 그 이전 단군이래의
누적보다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은 분량이다.

더욱 요즘 몇달 정신적 변화는 초고속이어서 사뭇 현기증이 난다.

역대 대통령 6명중 생존자 3명, 그중 2인이 구치소에 있고 한사람 마저
뒤를 따르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본인 외에는 아무도 못하는 상황이다.

마치 1세기 간격의 연산-중종반정과 광해-인조반정을 단 몇달에 함께
치르는 압축이다.

초음속 상태에선 속도감을 잊어서 그런가.

이런 급류속에 사회가 더큰 요동없이 이만큼 굴러가는 것을 성숙했다며
스스로 놀라는 이가 많다.

과반수는 전-노 양씨의 무모한 권력욕,탐욕스런 축재, 무치의 자세에 분노
하며 적폐청산의 호기를 다시 놓칠까 우려한다.

이 사회에는 비리가 두껍게 쌓여 있다.

어디서부터 손을 댈지 막연할 만큼 공직사회 사적조직 가릴것 없이 썩어
있다.

"봉투"를 받고 만일 "싫소, 책임이 더 중하오"한다면 마치 일목국에서
두눈가진 사람 취급받는 세상이다.

오염을 산소처럼 호흡하고 산다.

이 속에 사회 초년생들은 교과서의 정의가 바로 불의이고 애국자가 뒤에
보니 도둑이라는 절망에서 현실문제에 과격하기 쉽다.

일상에선 선배의 뒤를 따르다가도 일단 기성의 비리라 하면 조건반사적으로
과격 연대반응에 휘말린다.

그런 젊음의 정열은 개발 연간을 통해 단군이래 초유의 기적을 낳는 저력이
되었다.

그러나 열차가 앞으로 질주할 때는 차안의 인체들이 모두 전방을 향해
균형을 잡지만 열차가 순간이라도 멈칫하면 급반동 충격이 온다.

열차는 질주만 계속할순 없다.

여러 역에서 정거해 내리고 태워야 하고, 타선과 교차할땐 전철을 해야
제기능을 한다.

따라서 탑승자 전원이 질주 순간에만 익숙해 넋을 놓아선 위험하기 짝이
없다.

특히 기관사등 승무원은 어디부터 감속해 어디서 정거하고, 또 재출발해
가속을 할것인지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차창밖에도 장애물 위험물이 언제 달려들지 상시 대비해야 한다.

자동장치에 의존할순 없다.

보자.

질주하는 이 순간, 이 사회란 열차의 승무원의 역할은 제대로 수행되고
있는가.

모두 앞으로 쏠린채 몸의 균형을 잡고는 있지만 정차와 전철 장애에 대비,
엔진 창밖등의 이상유무를 점검하고 있는가.

우리 대부분의 과거는 부끄럽다.

자유당 때도, 짧은 민주당 때도, 3~4공 18년도, 5~6공 13년도 전진균형
속에 행진곡만 합창했지, 그래서 속도감에 도취됐지, 질주속에 옥죄고
추락당하는 희생과 비리와 부패에 제때 경고음을 발하여 미연 방지에 부은
노력은 하찮다.

바야흐로 문민호가 달리고 있다.

속도 역시 빠르다.

이 열차에는 과연 경고음장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가.

경고같은 건 필요없이 그저 쾌속에 앞으로 몸을 숙여 달려만 가면 되는가.

헌재발표 직후 지명된 새 총리가 오늘 인준을 받으면 새 내각이 즉시
기적을 울리며 다음 역을 향해 달릴 것이다.

전-노씨의 문죄, 최씨의 개구증언등 현안들이 처리돼 나갈 것이다.

종래의 속도를 유지할지, 감속할지는 모르되 급변속하면 차내가 뒤죽박죽이
될수 있다.

그러나 교대 승무조는 전처럼 승객들과 어울려 손뼉치며 흥을 돋우는 무사
안일 말고 안팎사정, 궤도상태, 정차.종착지역에서 승객이 맞을 비바람의
수량 풍향까지 관심을 써야 한다.

그러다 이상이 예감되면 기관사에 급고하여 불상사를 예방해야 한다.

그저 언제나처럼 적당히 벼슬 뽐내며 재미보다가 어떤 역에서 사쁜 하차
하면 된다는 생각 가지고는 지금 통과중인 황색지구를 무사히 빠져나갈
승무역을 해내지 못한다.

당장은 책임을 모면할지 몰라도 훗날의 심판을 피하지는 못한다.

승무원의 범주는 넓다.

제복입은 철도청 직원만이 전부가 아니다.

열차에서 상시 생계활동에 종사하는 여러 직종도 안전-명랑-정시 운행을
위해 정규 승무원 못지 않은 기여를 해야 공생한다.

이 사회란 열차에서 특히 언론의 책임은 가장 무겁다.

오히려 정규직의 기속적 역할보다 넓고 자유롭고 객관적인 시각에서 열차의
운행과 둘러싼 환경 상황이 정상인가, 아닌가를 말하며 위급하면 고성으로
경고를 발해야 한다.

이러나 저러나 매기있는 상품으로 사세를 지탱하고 확장하면 그만이라는
근시로는 열차에 기대 사는 고객, 자천하는 승객대표 감독으로서의 자격
에서, 인간미에서 모두 실격이다.

오히려 유해한 기생자다.

제발 이 열차가 과속 과열하다가 전철을 밟는 불행은 없어야 한다.

훗날 7공청산의 외침이 들려서는 이나라 역사위에는 보복의 무한소수 같은
악순환이 멎지를 않을 것이기에 하는 말이다.

북의 사정만 해도 그렇다.

마치 럭비볼과 같다.

던지는 사람도 어디로 튈지 방향을 모를 형편이다.

그러나 확실한것 하나가 있다.

과거 4.19전후 혼란 놓친 것을 천추의 한으로 여기는 저들이 다시 남에
결정적 혼란이 일어나는 순간 쳐들어 올 준비의 개연성이다.

국력차가 이대로 벌어지다간 앉아서 먹히고 지배층은 다 죽는다는 것을
저들이 모를리 없다.

그러니 어려워도 준비를 해놨다가 여차직하면 이판사판 쳐 부수자는 생각을
함은 오히려 정상이다.

거꾸로 이상한 쪽은 그런 빤한 걸 가지고 그렇다 아니다 까부르는 이쪽
이다.

한눈 뿐인 일목국에 두눈 가지고 들어갔다간 병신 되기 알맞다.

우리가 사는 이 사회를 그에 비유한다면 잘못일까.

옳다고 배워온 온갖 준칙들이 현실속에서 제대로 먹히는건 별로 없다.

그래서 허투루 "왜 모두들 틀리냐"고 일갈을 한다고 하자.

틀림없이 "왜 너 혼자만 눈을 두개나 달고 육갑이냐. 이 병신아"

삿대질에 아우성 소리가 되받지 않을까.

이 해가 가기전에 자문해 보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