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1기가 싱크로너스 D램 시제품을 개발한 것은 메모리반도체에
관한한 기술수준이 세계 최선두에 있다는 것을 입증하고 있다.

이번 시제품을 완전한 개발로 보기는 어렵지만 실제 칩 크기의 제품을
만들었다는 점에서는 상당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아직 달착륙까지는 못했어도 달표면에는 가장 가까이 접근했다고
말할 수 있다.

삼성이 반도체의 "기가시대"를 최초로 열어젖힐 유력한 업체로 부상한
것이다.

삼성이 발표한 시제품은 지난 2월 NEC가 선보인 제품과 두가지 점이
다르다.

우선 칩의 크기다.

NEC가 당시 선보인 1기가D램 시제품은 2백56메가D램 4개를 합한
크기였다.

쉽게 말해 1기가D램이 2백56메가D램보다 4배의 집적도를 가지니까
칩 4개를 붙여놓은 꼴이었다.

따라서 이 제품은 사용하기 힘들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반해 삼성이 내놓은 시제품은 훨씬 작은 칩사이즈를 갖고 있다.

사실 반도체는 성능 못지않게 소형화가 중요하다.

크기가 작아야 세트제품에서 시스템을 구성하기 쉽고 웨이퍼에서
나오는 제품 수도 많아진다.

삼성의 시제품이 주목받는 것은 이같은 상용화요소를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의 시제품이 싱크로너스로 설계됐다는 것도 NEC의 제품을 뛰어넘는
의미를 갖는다.

싱크로너스는 64메가D램 이후 메모리반도체의 주류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되는 차세대 선두주자 제품이다.

미국 인텔사는 64메가D램 이상급 메모리반도체에선 싱크로너스를
메모리 반도체의 표준으로 만들자는 제안까지 해놓고 있을 정도다.

싱크로너스 D램과 일반 D램의 차이는 정보처리속도다.

싱크로너스는 CPU(중앙처리장치)와 같은 속도로 정보를 전달하는데
반해 일반 D램은 그렇지 못하다.

따라서 정보처리속도가 빠른 PC(개인용 컴퓨터)의 CPU가 요구하는
데이터를 제 때 전달하지 못한다.

이에 따라 시스템에서는 데이터 병목현상을 일으켜 프로그램이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는 문제점이 있었다.

현대전자가 삼성보다 한발 늦게 2백56메가D램을 개발하면서 굳이
싱크로너스로 제작한 것이나 삼성이 기가급에서 싱크로너스를 채택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결국 국내업체가 메모리반도체 분야의 최첨단 기술을 선점해 차세대
제품분야에서 주도권을 거머쥐게 된 것이다.

하지만 삼성이 메가에 이어 기가시대에서도 선두를 굳혔다고 확실히
단언하기는 아직 이르다.

이번에 내놓은 제품이 개발을 인정받을 수 있는 워킹 다이에는 못미치기
때문이다.

워킹 다이란 웨이퍼에서 절단, 칩의 형태를 갖춘 상태에서 작동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 삼성의 시제품은 아직 웨이퍼를 절단하지 않은 상태다.

정보처리단위인 10억여개의 셀(cell)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신뢰성
검사 등이 이뤄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시험제작품인 셈이다.

삼성이 기가시대의 테이프를 끊기 위해선 앞으로 워킹 다이를 내놓고
엔지니어링 샘플등을 선보여야 하는 단계가 남아 있다.

이미 시제품 개발을 발표한 NEC등 일본 업체들은 물론 미국업체들이
기가시대를 향 해 발진을 서두르고 있는 것도 안심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다.

특히 일본기업들은 기가D램을 공동으로 개발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그 움직임은 메모리반도체의 선두주자인 삼성을 타깃으로 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삼성은 이번 시제품 개발을 계기로 상용단계의 1기가 싱크로너스
D램 개발에 가속을 붙여 나갈 수 있는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지만
기가시대의 선두 싸움은 아직 승부를 점칠 수 없는 진행형이다.

<조주현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