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용인군 용인읍 고림리에 위치한 고려.

신발소재인 가죽원단을 생산하는 고려는 지난 80년부터 이곳에서
기업활동을 해오고 있다.

"고려의 노사는 신의를 바탕으로한 노사관계를 이끌어 가는데 최선을
다한다".

고려 노사의 단체협약서 첫머리에 적힌 구절이다.

노사 상호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협력적 관계를 일궈 나갈것을 아예
단체협약에 명시해 놓고 있다.

이회사의 노사관계는 지난 90년부터 노조가 펼친 생산성 향상운동을
계기로 생산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이회사의 노사관계가 협력적 단계로 발전하게 된것은 한때 심각했던
불황을 노조가 앞장서 타개하면서부터 였다.

부산 신발공장의 축소와 주문감소로 지난 80년말 생산성이 7%가까이
떨어지고 이익률도 하향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높은 성장세를 계속해 오던 고려의 노사에게 큰 충격이었다.

노조에서 먼저 위기의식을 느꼈다.

황윤진 현 노조위원장이 1시간 빨리 출근해 리어카를 끌며 공장주변
환경정리에 앞장섰다.

회사살리기는 환경운동이 첫걸음이라는 소박한 생각에서 였다.

위원장의 솔선수범은 전조합원에게 확산됐다.

노조간부들이 뒤를 따르고 조장, 반장들이 속속 공장환경정리 운동에
동참했다.

운동의 성과는 작업현장으로 연결되기 시작했다.

근속연수 17년이상이 대부분인 근로자들은 노조의 열성에 동참,아침
작업시간 10분전부터 기계예열을 하는등 작업의 사전준비가 철저해졌다.

점심시간을 1시간에서 40분으로 줄이고 대신 퇴근시간을 20분 앞당겼다.

90년 한해동안 지속된 운동결과 생산성은 13% 증가했다.

생산성향상은 근로의식 혁신과 작업현장 개선에 크게 좌우된다는 점을
확인한 한해였다.

91년에는 노조의 회사살리기에 감동한 이사진이 노조요구가 없는 상황
에서 연말 상여금 50% 추가지급을 의결했다.

그해 생산성은 15%나 증가했고 노사의 사기가 하늘을 찌르듯 충천하기
시작했다.

이같은 경영성과는 국내경기가 침체속에 빠져 있던 92,93년에도 계속
이어졌다.

특히 93년에는 노사 공동으로 생산성향상 목표치를 정해 놓고 환경정리
운동, 공장자동화, TPM운동등을 입체적으로 진행시켜 피혁업계의 전반적인
경영악화에도 불구, 고려는 10%의 생산성 향상을 달성해 냈다.

이회사 노사는 94년에 의미있는 노사합의서를 체결했다.

생산성 향상에 따라 상여금이 자동으로 지급되도록 공식화 한것이다.

이같은 합의에 따라 근로자들은 자발적으로 생산활동에 참여, 생산성
향상실적에 따라 연말성과급을 지급 받았다.

노력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자 근로자들이 변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불필요한 인원이 있는 생산부서는 근로자들이 먼저 인원조정을
요구할 정도로 성과급지급 제도는 정착돼 가고 있다.

황위원장은 "노조의 생산성 향상운동은 회사측의 적극적인 지원을 받아
제도로 정착됐다"며 "이를 가능케 한것은 그동안 축적된 신뢰관계가 큰
힘이 됐다"고 말한다.

고려의 노사는 한발 더 나아가 생산성과 물가인상률, 이익률등에 따라o
임금인상이 자동으로 결정되도록 하는 방안을 연구중이다.

매년 임금협상은 번거로우니 등식화하자는 이야기다.

고려의 노사관계가 이렇게까지 발전할수 있었던 것은 오랜 시간동안
다져온 협력과 신뢰의 전통에 기초한다.

지난 87년 전국적인 분규가 발생해 대부분 업체가 몸살을 앓을 때도
고려는 별다른 갈등을 겪지 않았다.

80년초 부터 자녀학자금 지원등 다양한 복지제도를 이미 도입해 놓고
있었기 때문에 16년째 무쟁의 전통을 쌓아 올수 있었다.

김국철 공장장이 한달에 한번씩 조회시간에 회사의 모든 실적을 공개하고
임금협상시에 실시하는 3년간 모든 경영정보 공개는 고려에서 이미 관행
으로 정착된지 오래다.

김공장장은 "노사문제는 행사나 연수회등 형식적인 것보다는 마음에서
우러나는 정신이 더욱 중요하다"고 지적하고 "고려의 경영진은 이익을
종업원 복지에 재투자하고 사회에 봉사하는 마음으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고 강조한다.

황위원장도 "노동조합이 소신을 가지고 회사측을 신뢰하고 밀어줄때
회사의 발전과 근로자의 생활향상이 가능하다"며 "우리 노동현장도 이제는
긴안목을 가지고 노사협력에 관심을 가질때"라고 강조한다.

고려는 지금 비전 21운동을 펼쳐나가고 있다.

21세기 일류기업이라는 목표를 두고 고객만족, 경쟁력 확보, 원가혁신 등
여러부분에서 개선과 혁신을 실천하고 있다.

"지금처럼 노사가 공동운명체라는 인식이 확고하고 서로의 신뢰가
흔들리지 않는다면 초일류 피혁제조업체라는 목표달성이 어렵지 만은
않을것"이라는게 김공장장의 생각이다.

[ 용인 = 김희영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2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