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부시게 푸르른 가을날 정든 친구들과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 직장 얘기, 조금은 숨겨놓았던 집안 애기를 나누는 것이
각박한 세상 살이에 그나마 위안이고 그렇게 모일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일 수 있다.

더욱이 항시 여자들(부인들)을 동반하고서야..

고등학교, 대학생활을 보내면서 젊은 날 기쁨과 고뇌를 함께 나눈 친구들이
서로 다른 길을 걸으며 바삐 사는 중년 시절에 서로 만나기도 어렵고
경조사때 한번씩 보는 것으로 아쉬워 수년전 정식 모임을 만들게 되었고
이름하여 항시 푸른 우정을 간직하자는 의미로 청우회라 명하였다.

홍삼표 총무(서울대 치대교수)의 성실한 희생(?)을 바탕으로 이제는 회원들
각자의 삶에 중요한 모임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어느덧 모두 사십대 중반이
되었다.

누구나 좋아하는 고현수 회장(미진프라자 건설이사)도 어느새 흰머리가
더 많아지고 여드름 투성이던 김유신 전회장(일홍프라스틱대표)은 수시로
해외 나들이를 하는 유능한 사업가가 되었고, 학비에 쪼달리던 송경헌
전전회장(아트란티스 대표)도 작지만 금융계통업체 대표가 되었다.

친구들의 조금 짓궂은 장난에 울음을 터트리던 김동화회원(바이블번역
선교회)은 좋은 일만 골라서 하는 선교회 책임자가 되었고 캠핑가면 느린
동작에 웃음을 선사하던 김희경회원(아트컴 대표)은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비디오 제작사대표가 되었고 고교시절 트럼펫으로 외로움을 달래던
진상국회원(고려상사 부장)은 좋은 가정을 이루고 모임에 가장 적극적인
회원이 되었다.

술독에 자주 빠져 있던 김종성회원(삼성건설 전기부장)도 착실히 전문인이
되었고 멀리 미국으로 이민간 천병수회원(자영업)도 회비와 격려편지 때론
회원들 선물까지 빠지지 않고 보내고 있다.

해외지사에서 수출 일선을 담당하는 채휘수회원(효성물산 인도지사장)도
1년에 한두번 고국 방문때 밀린 회비와 더불어 밀린 술잔도 한꺼번에
돌리고 있다.

고교시절 딱한번 백일장에 장원했다는 이유로 이번 청우회모임 얘기를
쓰게 된 필자(아세아전기 전무이사)도 적극인 회원이다.

금년에도 크고 작은 모임을 수시로 가졌고 내년에는 부부동반 해외풍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강원도 산골쯤에 꽃나무를 심고 밭농사를 지을 수 있는
농토를 마련하여 정년후 함께 모여 우정을 나눌 조그만 별장을 건립할
계획으로 회원 모두 적극적으로 건립비를 적립해나가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