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영조씨는 신라 제26대 진평왕께서 시조의 성을 "조"로, 이을 "계"
"용"자로 사성명하였다.

조문을 빛낸 대표한 선인들로는 신라태사부마도위창성부원군인 시조,
고려말의 충신 조민수장군,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가 남명 조식선생"
건국초기엔 애국애족의 상징으로 북의 고당 조만식선생 그리고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했던 남의 죽산 조봉암선생을 들수 있겠다.

득성의 전설이 깃든 "용지"가 있는 화왕산은 창영의 진산으로 지금은
봄가을에 산악인들의 성대한 축재가 치러지며 사철 등산객이 끊일 줄
모르는 유명한 산으로 전국에 널리 알려져 있다.

"창조산악회"는 타문장에서는 찾아보기 힘드는 국내유일의 산악회가
아닌가 생각되는데,산악회가 창립되기는 지금으로 부터 7년전 "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의 표어를 내걸고 "제24회 서울올림픽"이 열렸던
해인, 1988.5.27 도봉산자락.

뜻을 같이 하는 많은 일가분들이 참석한 가운데 화수회내에 산악도
(대외:창조산악회)를 두기로 하고 집행부를 구성하여 출발한 이래로
1995년9월24일 산행까지 78회를 기록하였다.

회를 거듭할 수록 일진월보하여 지금은 평균 40명선에 이르러 조문과
그가족이면 누구나 참석이 가능하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지역 또한
불문하나 주로 수도권일가가 대부분이다.

산행지로는 심중팔구가 서울 경기에 접한 산들이며 가끔 전세차로
야유회를 겸해 장거리 산행도 가진다.

회운용비용은 산행에 참석하는 회원들로 부터 일정액의 회비를 갹출하여
입장료와 주류.안주 구입에 쓰며 연말에는 여러가지의 상을 만들어 시상
하기도 한다.

적립한 기금과 회장단등의 찬조금으로는 창립일인 5월에 특별행사를
치르는데 이때에는 선물및 식사제공 그리고 갖가지의 게임도 있어 구름
같이 모여든 일가의 수는 물경 3백여명에 이른다.

참석한 일가중에는 팔순을 넘는 분이 두분계신데 어찌나 채력이 좋으신지
항상 앞장 서시며, 식사후 주변청소는 8순노익장의 차지였었는데 늘 그렇게
하시므로 일가전원이 환경보전에 적극적이다.

"창조산악회"는 화수회의 조기현회장님 조기천부회장님이 화수회일과
함께 산악회일에 물심양면으로 헌신적인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1990.12 연말 회식시에 산악회의 회장을 맡은 본인은 1995.1 까지는
성실히 참여하였으나 2월 부터는 전근으로 대구에 오게 되어 부득이 관심이
적어 지게 되어 안타깝기만하다.

특히 화수회의 조규찬총무부장님의 협조와 두분 부회장 조풍차일가와
조영실일가님의 노력에도 깊은 감사를 드리는 바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