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간 쉬고 난 일행은 가정의 인도로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문득 벽도화 꽃밭이 나타났다.

그 꽃밭을 끼고 돌아가니 대나무 울타리와 꽃나무로 엮은 둥그런 문이
보였다.

그 문을 중심으로 흰 담장이 둘러 있고 그 담장을 따라 수양버들이
휘늘어져 있었다.

일행이 문으로 들어서자 양쪽으로 회랑이 길게 뻗어 있었다.

뜰에는 기암괴석들이 여기저기 보기좋게 놓여 있었다.

한쪽에는 파초가 몇 그루 서 있고,다른 한쪽에는 해당화 한 그루가
우산모양으로 가지들을 펼치고 있었다.

푸른 실 같은 것이 늘어뜨려져 있는 그 가지들에는 마치 가지가
토해놓은 듯이 단사처럼 붉은 꽃들이 피어 있었다.

"야, 정말 멋있는 꽃이군. 지금까지 여러 종류의 해당화를 보아왔지만
이렇게 모양이 아름다운 해당화는 처음 봅니다"

문객들이 일제히 감탄을 하였다.

그러자 가정이 웃으며 말했다.

"이것은 일명 여아당이라고 하는 외국산 해당화입니다.

여아국이라는 나라에서 건너왔다고 해서 여아당이라고 하는데,
여아국을 가보았다고 하는 사람은 아직껏 한번도 만나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래서 여아국이니 여아당이니 하는 것이 다 지어낸 이야기가 아닌가
여겨집니다"

"그런데 왜 그런 이야기가 나왔을까요?"

문객들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그 해당화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보옥은 또 아는 체를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저 해당화를 잘 보십시오. 꽃의 색깔이 꼭 여자가 연지를 바른것
같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 가녀린 모양새는 병든 처녀처럼 요염하지 않습니까"

"병든 처녀처럼?"

문객들은 보옥이 어린 나이에 어떻게 병든 처녀가 요염하다는 것을
알았을까 싶어 의아한 눈길을 보내는 한편, 보옥의 말이 그럴 듯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보옥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꽃의 모습이 그러니 이야기를 지어내기 좋아하는 풍류객들이 여아국
이니 여아당이니 하는 말들을 만들어낸 것이겠죠.

그래서 소설에까지 여아당이라는 이름이 나오고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다 보니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사실로 믿게 되었다
이겁니다"

보옥의 말에 가정은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다가 얼른 표정을
바꾸었다.

네가 알면 얼마나 알겠느냐 하는 기색이었다.

"자, 쓸데없는 이야기는 그만하고 이 뜨락에 좋은 이름을 붙였으면
좋겠는데"

가정이 뜨락을 휘 둘러보았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