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대통령의 비자금파문 이후 중소기업들의 자금사정이 급격히
악화되고 있다.

금융기관에 자금이 남아돌아 금리는 하향세를 보이는 반면 중소기업의
부도는 늘어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달들어 가구업계의 중견기업인 상일과 의류업체인 논노가
부도를 내면서 한계중소기업들이 부도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이 물론 새삼스로운 현상은 아니다.

올들어 9월말현재 부도업체수가 1만개를 넘어서는등 중소기업들의 자금
사정은 계속 악화돼 왔다.

그러나 비자금사건으로 중소기업들의 자금난이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데서
중소기업들은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우선 중소기업들이 급한 운전자금을 융통해온 사채시장이 위축되고 있다.

평소 하루 4백억원이상의 자금을 거래해온 명동 사채시장의 경우 비자금
사건이후 거래규모가 절반이하로 축소됐다.

이에따라 신용도가 낮은 중소기업들은 아예 자금을 구할수 없는 상황이다.

금융기관들에서 대출받기 어려운 기업들은 사채시장에서도 내몰라라 한다는
것이다.

사채시장이 사실상 마비상태에 들어가 있다고 보는 이들도 많다.

사채시장에 자금이 마른 것은 비자금사건이후 전주들이 움츠러들고 있는
탓이다.

"전주들이 비자금수사로 신분이 노출될까봐 자금을 거뒤들리고 있다"는게
사채시장관계자들의 얘기다.

사채시장에 일종의 신용공황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가계수표도 받아주지 않아 영세중소업체들이 애를 먹고 있다.

"상당수의 중소기업들은 가계수표로 대금결제를 하고 있다. 최근에는 가계
수표마저 믿지 못하는 상황이 됐다"는게 영세사업자들의 얘기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금융기관들이 신용도가 떨어지는 중소기업에 대한
대출을 극히 꺼리고 있다는 데에 있다.

최근 중견기업들까지 부도로 쓰러지는 상황에서 이런 경향이 더욱 심해지고
있다.

"금융기관들은 신용도가 높은 대기업들만 상대하려고 한다. 중견 중소기업
에 대해선 신용도조사가 더욱 엄격해졌다. 그러나 대기업들은 최근 시설
투자규모가 줄면서 자금사정이 넉넉하다. 그러다보니 금융기관들은 자금이
남아돌고 중소기업들은 자금구하기가 어려워졌다"(이정조 21세기향영컨설팅
사장)는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부도가 늘어나면서 금융기관들이 대출을 꺼리고 그 여파로 부도는 더
늘어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비자금조사로 대기업들의 경영이 위축될 경우 그 여파가 중소
기업에 까지 미칠 것이라는게 중소기업들의 우려사항이다.

경영이 어려워진 대기업들이 주문량을 줄이고 하청대금의 결제마저 늦출
경우 중소기업들의 자금사정은 더 어려워질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한보 한양등 비자금과 관련해 조사를 받고 있는 대기업들의 하청
업체들은 좌불안석이다.

이들 대기업이 혹시라도 자금사정이 나빠지면 하청중소기업들은 당장
생사가 달라지게 되는 탓이다.

이런 와중에 정부의 중소기업지원시책도 시들해지고 있다는게 중소기업들의
불만이다.

지난 8월 김영삼대통령이 직접 대기업그룹의 회장들에게 중소기업을 적극
지원해 주도록 당부한 이후 대기업들의 태도가 상당히 달라진 것은 사실
이다.

그러나 정부와 대기업의 관계가 다시 악화될 경우 대기업들의 중소기업지원
이 유명무실해지지 않을까 중소기업들은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볼때 노전대통령의 비자금사건으로 중소기업들의 자금사정이 더
악화되지 않도록 정부가 대책마련을 서둘러야 할 시점인것 같다.

< 박영균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