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균 < 장은경제연소장 >

이번 노전대통령의 부정축재사건은 미리 짜여진 시나리오라는 설이 있다.

대부라는 소설에서처럼 대부가 장례식을 치르거나 아들의 음악회 데뷔를
축하하는 화려한 오페라 공연 중인 바로 그 순간, 그들은 계획된 타깃이
되는 인물들을 공격하는 영화의 한장면을 닮았다는 것이다.

캐나다와 유엔을 방문하면서 세계 유수한 국가지도자와 악수를 하는 장면이
TV에 연일 소개되는 과정에서 타깃이 되는 노전대통령을 지탄하고 이를
언론이 연일 보도하고 있다.

이 통에 책방에서는 파리를 날리고 있으며 평생 돈에 쪼들리며 사는 돌쇠와
영순이는 비분강개하다 못해 소주집 매상을 올린다.

참담한 일이다.

비록 이번 일이 미리 짜여진 시나리오라고 하더라도 이미 터진 이상
노전대통령의 부정축재 사건은 두갈래의 길을 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하나는 자금의 용도다.

특히 대통령 선거자금으로 얼마가 누구에게 들어갔느냐 하는 정치자금의
문제다.

또 하나는 자금 조성 문제다.

무슨 돈을 누가 얼마나 냈으며 그 대가로 무슨 특혜를 누렸는가 하는
재벌 비리의 문제다.

이들다 풀기 어려운 문제다.

만일 짜여진 시나리오가 있고 그것이 정치권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라면
정치자금문제는 해법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재벌의 정경유착은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일일이 재벌을 불러들여 여죄를 추궁하고 이를 근거로 전대통령을 압박하는
자료로 삼는다면 그것으로 족한 것일까.

그렇게 한다면 한국의 재벌은 다 불려가서 곤장을 맞고 비틀거리며 나올
것이니 경제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고 기업의 이미지는 땅에 떨어질 것이다.

한때 5공청문회에서 모 회장은 시류에 쫓아 살기 위해 전대통령에게 돈을
주었다고 진술한 바 있다.

어느 누구라고 이보다 더 세게 버틸 수가 있단 말인가.

한때 버틴 것으로 오해를 받아 회사를 빼앗긴 모 상사회장을 우리는 기억
하고 있다.

누구의 안전이라고 괘씸죄를 얻으려 할 것인가.

따라서 어느 누구라도 대통령이 부르신다면 돈을 싸 들고 가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법의 경중은 그렇다 하더라도 받은 자가 벌을 받는데 준 자가
온전치는 못할 것이다.

이 또한 진리가 아닌가.

그렇다면 준 자가 되게도 못난 놈에게 주었거나 빼앗긴 꼴이 되고 만
것이다.

그렇다면 기업은 못난 놈에게만 주었던 것인가.

기업 속성상 그동안 줄만 한데는 다 주었음은 천하가 다 아는 것이 아닌가.

옛날에도 재벌의 가문에 내려오는 가훈에 의하면 "관가의 식량을 대어
주어라"는 대목이 있다.

또 "관내에 굶은 자가 있게 해서는 안된다"는 구절도 있다.

부란 그런 것이다.

그런고로 돈 가진 자를 족친다고 해서 이러한 인간적인 맥락마저 없이
할수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문제가 되는 것은 기업윤리의 척도가 될 것이다.

어디까지 기업이 청부의 도덕을 위해 하지 말 일과 해도 될 일이 무엇인지
를 정해 놔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이미 돌아올수 없는 다리를 건넌 것이므로 이제 시나리오가
갖는 의미는 크게 축소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다만 시나리오 작가가 누구냐, 누가 누굴 단죄하는 것이냐, 또 그 목표가
정해진 것이냐, 아니면 오로지 정의를 위해 한정없이 써먹을 것이냐 하는게
남아 있을 뿐이다.

이럴 경우 가장 작게는 노전대통령 개인의 부정부패로 낙인찍어 그 재산을
몰수하고 친인척을 단죄하며 관련 기업을 소환조사하는 선에서 마무리하는
것일 것이다.

이보다 더 큰 시나리오는 정계개편일수 있다.

즉 차제에 정치자금을 어떻게 누구에게 얼마를 주었느냐를 문제삼아
구정치인들에게 흠집을 내게 하고 내년 4월 선거에서 이들을 자연히 내 모는
것을 목표로 할수 있다.

끝으로 아주 이상적인 목표다.

정의가 또는 성경에서처럼 공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성역 없는 수사를 진행한다는 것일수 있다.

그 논리는 언제나 그러지 않았느냐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도가 지나치고 필요도 없으며 해서도 안될 일이다.

다만 일단 불거져나온 사안에 대해서는 성역 없는 수사가 불가피할 것이다.

불가피하다는 것은 내년 4월 선거와 관련해서 그렇다.

그동안 국민은 너무도 공의가 아닌 해결에 식상해 왔다.

법의 운영이 잘잘못을 가리는 것보다는 언제나 해결을 앞세워 왔고 그
능률성이라는 비정한 해결에 피맺힌 절규와 분노가 쌓일 만큼 쌓인게 현실
이다.

이번에도 정의보다 해결에만 급급한다면 표는 집권당을 떠날 것이고
그 잘한다는 검찰도 추풍낙엽 같은 표앞에 굴복하고 말것이 염려된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때 기업은 우선 자숙할 것을 국민 앞에 스스로 밝혀야 할 것이다.

비록 이번의 잘못이 관행의 통치자금이 되었건 자발적인 성금이 되었건 더
이상 존속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두번째로 직접 연루되었으며 실정법에 저촉된 기업에 대해서는 일단 법적
제재를 가해야 할 것이다.

법앞에 만인이 평등한 만큼 피해서도 피할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물론 정황으로 보아서 일개 기업인과 권좌의 최상위에 앉아 있는 대통령과
의 관계를 법앞에 평등이라는 잣대만으로 잴수는 없을 것이다.

끝으로 기업인은 스스로를 방위하고 스스로 자정키 위해서 기업윤리에
관한 입장을 밝혀야 할 것이다.

이번 재계의 성명은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더 큰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아야
할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