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전대통령의 거액 비자금파문에 대한 검찰수사가 기업인 소환으로
확대되는 가운데 경제계 중진들이 어제 오전 전경련에 긴급히 모여 이번
사태에 대한 경제계의 입장을 정리했다.

회의를 마친뒤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사과의 말씀"이란 짤막한 발표문에
압축해서 공개된 비자금파문에 대한 경제계의 입장은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이번 사태에 기업인들이 직.간접으로 연관된 것을 매우 부끄럽게
생각하며 진심으로 국민앞에 사과함과 아울러, 둘째 보다 공정하고 깨끗한
기업경영으로 국민의 신뢰를 받는 기업인상을 이루어나갈 것과, 셋째
앞으로는 어떤 경우 어떤 명분이든 결코 음성적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을
것임을 다짐하고 있다.

이같은 발표를 보면서 우리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착잡한 심경을 금하기 어려워진다.

이순간 이후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일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첫째 사과가 됐건 다짐이 됐건 경제계 중진 기업인들이 국민앞에 지난날의
잘못을 반성하면서 용서를 비는 일은 정말 이번이 마지막이 돼야 한다.

그동안 재계는 혁명적인 정권변동이 있었을 때와 재계가 표적이 된 큰
경제관련 사건이 터졌을 때등 3차례에 걸쳐 비슷한 결의를 했다.

이번은 네번째가 된다.

이번이 마지막이 되기 위해서는 재계 스스로가 새로 태어난다는 결의와
각오로 기업을 경영하고 정치와 정부와의 관계를 정리.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번에야 말로 정경유착의 고리를 명실겸전 확실하게 단절하기 위해
구체적인 행동지침과 실천계획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둘째 정치인 관료사회의 자성과 개혁노력도 동시에 있지 않으면 안된다.

기업인에 못지 않은, 어찌보면 더욱 강력한 실천결의와 각오가 있어야
한다.

이번 비자금사태는 국가의 최고권력자인 대통령이 기업인들로부터 자금을
거두어 그것을 정치자금과 개인 축재에 쓴 내용으로 요약된다.

중요한 점은 대통령이 아닌 다른 많은 여.야 정치인, 높고 낮은 관리가
개입된 음성적 자금의 수수와 비리도 좀체로 근절되지 않는 관행으로 존재
한다는 사실이다.

손바닥도 마주 쳐야 소리가 나듯이 주는 사람과 받는 사람이 함께 나서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된다.

특히 정경유착과 관의 부정부패는 기업활동을 온갖 규제와 간섭으로
거미줄처럼 묶어 두고 있는데서 비롯된다.

기업을 도와주기보다 어떻게 해서든 얽어매고 관청의 권한 아래에 두려고
하는 한 그 고리를 끊기는 어려울 것이다.

셋째 기업활동과 정치활동을 포함해서 돈에 관한한 우리 사회가 구조적으로
보다 투명해져야 한다.

"맑은 물에는 고기가 살지 못한다"는 잘못된 인식이 차제에 고쳐져야 한다.

세금과 금융에서 투명성이 제고되지 않으면 안된다.

끝으로 이번 사태의 조속한 수습과 경제충격의 최소화를 거듭 촉구하고
싶다.

기업인 조사는 이권과 결부된 뇌물을 제공한 경우와 돈세탁및 변칙실명화를
도운 경우등 명백한 범법행위에 국한돼야 하며 이를 통해 모든 기업인에게
경종을 울려 이번 사태가 전화위복의 전기가 되게 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