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우리 정치 형태는 덕치를 표방하는 왕도정치였기 때문에 정치를
담당하는 사람은 학덕을 겸비한 문사이어야만 하였다.

그랫 이런 인재를 길러내기 위해 수준높은 전인교육을 시켰던 것이니 경
(철학과 종교) 사(역사학)는 물론 문예와 무략까지도 독서와 실습을 통해
체득하지 않으면 안되게 하였다.

이에 선비들은 1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길을 여행하는 (독만권서,행만리로)
것을 이상적인 자기수련 방법으로 여기게 되었다.

이는 독서를 통해 얻은 지식을 현장확인하는 실습과정으로 여행보다 더
좋은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이들은 조국 산하를 편답하면서 지리와 인정을 살피고 명승고적이나
험산황야를 만나면 시.문.서.화로 호연지기를 토로하여 국토애와 민족애를
통한 조국애를 길러갔다.

단답형식의 입학시험만을 위해 십수년동안을 토막상식의 주입에만 몰두해야
하는 요즘 교육제도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생활교육이요, 실습교육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여행 그 자체를 학예수련의 연장으로 생각하고 항상 틈을
내어 국토순례를 게을리하지 않은데 돌아다닐 때마다 아쉬운 것은 아직
길안내 표시가 미비하여 길가기가 어렵다는 사실이다.

그런대로 안내판이 갖춰져 있는 곳이라도 무슨 까닭인지 지명의 본뜻을
알수 있는 한자 표기를 모두 생략하고 있다.

전통문화를 부정하는 것은 곧 근대화라고 생각하여 한문교육을 폐지하고
그 대신 영어교육을 강화시켰던 소아병적인 발상이 아직 계속되는 현상
이라면 참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같은 한자문화권에서 살아온 중국이나 일본등 우리 주변국 사람들은 한자
표기 그 자체로 모두 충분한 길안내를 받을수있을 터인데 그들이 문화적
동질감을 느끼는 것조차 기분 나쁘다는 말인가.

이제 문화적 자긍심을 되찾을 때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떳떳하게 한자를 병기하여 이천년 한문문화권에서 중추 역할을 담당해온
우리 전통문화의 실상을 온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우리의 여행길을
어렵지 않게 해주었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