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박계동의원이 폭로한 300억원대의 차명예금이 6공 비자금의
일부로 확인되자 정치권은 물론 경제계도 큰 충격을 받았다.

지난 23일 증시는 종합주가지수가 23포인트나 떨어지는 폭락세를 보였으며
신한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도 검찰의 본격적인 수사에 대비해 긴장된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기업들도 사태추이를 주시하고 있으며 사채거래가 끊기고 시중 실세금리도
오름세로 돌아섰다.

특히 경기의 하강국면이 점차 뚜렷해지는 지금 이같은 사건이 터져
내년이후 경제사정이 당초 예상보다 더 어려워지지 않을까 걱정된다.

따라서 우리는 정부가 이번 사건이 경제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하는 데도
신경을 써주기를 촉구하고자 한다.

물론 6공 비자금에 얽힌 비리를 덮어 두자거나 관련수사를 적당히 하자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이번 기회에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관련자들은 누구를 막론하고
엄벌에 처해 다시는 이같은 후진국형 정경유착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국민여론이며 동시에 우리의 바람이기도 하다.

일찍이 공자는 나라가 어려울때 국방과 경제에 앞서 민심안정을 강조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그토록 중요한 민심안정을 이루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잇따른 붕괴사고는 정치발전을 희생한 대가로
내세운 고도성장의 신화를 빛이 바래게 했다.

전국 곳곳에서 적발된 지방세 착복사건은 공무원들에 대한 불신을 극에
달하게 했으며 이번 비자금파문은 국정을 책임졌던 정권의 도덕성을
의심하게 하고 있다.

이같은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는 길은 철저한 진상조사와 일벌백계로
법질서를 바로잡는 수밖에 없다.

다만 한가지 더 바란다면 사건수사가 가능한한 신속하게 이뤄지고
관련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나 금융기관 임직원에 대한 문책인사도
최소화됐으면 하는 것이다.

우리에겐 오늘 뿐만 아니라 내일도 중요하며 민심안정을 이룬 뒤엔 다시
경제성장을 위해 매진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가장 바람직한 것은 사건의 진상을 누구보다 잘아는 노태우
전대통령이 스스로 진실을 낱낱이 밝히고 응분의 책임을 지는 것이다.

현 정부 출범이후 이미 여러 차례에 걸쳐 6공 비자금에 대한 내사가
있었다는 소문대로라면 노 전대통령측의 해명에 대한 사실확인에 별로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자금추적이다, 소환조사다, 관련기업에 대한 세무조사다
하며 공연히 시간만 끌고 소란을 피우며 여.야 모두 서로에게 유리한 쪽으로
정치적인 힘겨루기를 하는 것은 국가장래를 위해서도 불행한 일이다.

아울러 정부는 부패한 정치권력이 다시는 정상적인 기업활동에 부담을
주지 못하도록 정치개혁, 행정규제완화, 불합리한 관행철폐 등에 박차를
가해야 할것이다.

잇따른 사건과 사고는 과거의 잘못된 관행과 의식의 탓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잘못이 바로 잡혀가는 과정으로 볼수도 있다.

따라서 낙심하지 말고 지금의 위기를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슬기를
발휘해야 하겠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