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자금이란 말은 국어대사전에도, 세계백과대사전에도 없다.

며칠새 우리나라에서 통치자금이란 말이 유행하게 된 것은 노태우
전대통령의 300억원 차명계좌와 관련해 노전대통령측이 만들어낸 조어라고
생각된다.

노대통령시절에 경호실장을 지낸 이현우씨가 지난22일 "이 돈은 노대통령
재직시 통치자금 가운데 쓰다 남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쓰다 남은" 통치자금이 이 정도라면 통치자금 전체는 얼마나 되었을까.

통치자금이란 말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국가원수가 국가를 통치하기위해
필요한 자금이라 할수 있다.

그런데 통치자금의 전제가 되는 통치행위란 어떤 법률적 근거가 있다기
보다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등지에서 학설이나 판례로 인정된 국가행위이다.

통치행위는 "고도의 정치성이 개재되어 법원에서 그 합법.합헌성을 심사
하는 것이 부적당한 국가행위"로 구체적으로는 외국의 승인이나 외교사절의
신임.접수등 외교행위, 국회자율권에 속하는 행위, 대통령의 비상조치등을
들수 있다.

통치행위를 이같은 의미로 풀이할때 통치행위에 어째서 통치자금이
필요한지 이해할수가 없다.

다만 통치행위가 "초법적인 행위"라는데 착안해 비자금을 통치자금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닌가 짐작될 뿐이다.

따라서 이전경호실장이 통치자금의 용도를 "격려금 위문금등"이라고
설명한 것을 보면 통치자금이란 넓은 의미의 정치자금이라고 밖에 생각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보통국민"으로서는 이해할수 없는 몇가지 의문이 생긴다.

정치자금은 정치자금에 관한 법으로 조성하게 되어있는데 정치자금법을
위반하면서까지 어째서 통치자금을 조성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또 통치자금의 용도가 "격려금 위문금등"이라면 판공비가 있을 것인데
별도로 통치자금이 필요했을까 하는 의문이다.

특히 통치자금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할지라도 통치자금은 통치행위가
종료되면 국고에 귀속시켜야 할 성질의 자금인데 임기만료후 근3년이
되어가는데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은 무슨 근거에 의한 것일까.

그것도 야당의원의 폭로에 따라 검찰의 수사과정에서 밝혀졌다는 점에서
국민의 의혹은 가중될 뿐이다.

노전대통령의 통치자금으로 국민은 허탈감과 배신감, 그리고 분노의
소용돌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시급한 문제는 국민의 허탈감 배신감을 치유해
주는 극적인 처방이 아닐까 생각된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