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219) 제7부 영국부에 경사로다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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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저 바위에 새겨넣을 이름은 나중에 정하기로 하고 다음 장소로
옮겨갑시다"
가정이 이름짓기 놀이가 신이 나는지 한결 환해진 표정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였다.
보옥도 이런 일행에 끼인 것이 싫지는 않아 약간 들뜬 마음으로
뒤따라가면서 언덕길 같은 것을 만나면 가정을 부축해주기도 하였다.
조금 걸어가니 큰 바위산이 나타나고 거기에 석굴이 하나 뚫려
있었다.
그 석굴로 들어서자 서늘한 기운이 몸에 감겨왔다.
굴 벽에는 축축한 물기가 배어들어 있고 이끼까지 끼여 있었다.
공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는데도 제법 오래된 석굴처럼 보이게
만들어져 있었다.
가정과 보옥,문객들은 굴을 만든 솜씨에 새삼 감탄을 하였다.
보옥은 이런 굴에도 이름을 붙였으면 좋겠다고 생각되었는데 아버지나
문객들은 굴에는 이름을 붙이지 않을 작정인지 다른 말이 없었다.
그래서 보옥은 굴 이름을 자기 나름대로 떠올려보고 굴속을 지나갔다.
보옥에게 있어 굴은 항상 여자의 옥문과 질을 연상시켰다.
반면 축축하고 울퉁불퉁한 모습까지 닮아 있지 않은가.
그래서 굴 이름을 옥문굴이라 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비씩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 옥문굴을 머리에 관까지 쓴 선비들이 뒷짐을 지고 온갖 거드름을
피우며 지나가고 있는 꼴이 더욱 우스워 보였다.
"아니, 왜 웃는 거야?"
옆에서 걷고 있던 가정이 점잖게 물었다.
보옥은 뜨끔하여 웃음을 삼켰으나 곧이어 또 웃음이 푸 하고 터져
나왔다.
"아, 아닙니다. 이름짓기 놀이가 즐거워서요"
그렇게 얼른 대답하고는 걸음을 조금 빨리 하여 굴을 먼저 빠져나왔다.
"아"
보옥은 굴을 빠져나오는 순간, 저절로 감탄사를 발했다.
굴 바로 앞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꿈결같이 펼쳐져 있었다.
갖가지 모양의 나무들과 기이한 꽃들이 어우러져 이 세상에서 한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향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보옥은 심호흡을 하여 그 향기를 들이켰다.
보옥 자신도 한그루 싱싱한 나무로 변하는 것 같았다.
아니, 저기에 핀 큼직한 모란꽃 속으로 온몸이 녹아드는 것 같았다.
가정과 다른 문객들은 굴을 빠져나와 정원을 바라보면서도 보옥과
같은 느낌이 없는지 그저 한번 눈길을 주고는 지나칠 뿐이었다.
이름들을 지으러 나왔다는 사람들이 저렇게 완상력이 없어서야.
어린보옥이지만 그 어른들이 안타깝게 여겨지기만 하였다.
물론 그 정원 역시 방금 전의 석굴과 마찬가지로 이름을 얻지 못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0일자).
옮겨갑시다"
가정이 이름짓기 놀이가 신이 나는지 한결 환해진 표정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였다.
보옥도 이런 일행에 끼인 것이 싫지는 않아 약간 들뜬 마음으로
뒤따라가면서 언덕길 같은 것을 만나면 가정을 부축해주기도 하였다.
조금 걸어가니 큰 바위산이 나타나고 거기에 석굴이 하나 뚫려
있었다.
그 석굴로 들어서자 서늘한 기운이 몸에 감겨왔다.
굴 벽에는 축축한 물기가 배어들어 있고 이끼까지 끼여 있었다.
공사를 한지 얼마 되지 않는데도 제법 오래된 석굴처럼 보이게
만들어져 있었다.
가정과 보옥,문객들은 굴을 만든 솜씨에 새삼 감탄을 하였다.
보옥은 이런 굴에도 이름을 붙였으면 좋겠다고 생각되었는데 아버지나
문객들은 굴에는 이름을 붙이지 않을 작정인지 다른 말이 없었다.
그래서 보옥은 굴 이름을 자기 나름대로 떠올려보고 굴속을 지나갔다.
보옥에게 있어 굴은 항상 여자의 옥문과 질을 연상시켰다.
반면 축축하고 울퉁불퉁한 모습까지 닮아 있지 않은가.
그래서 굴 이름을 옥문굴이라 하면 어떨까 하고 생각하다가 자기도
모르게 비씩 웃음을 흘리고 말았다.
그 옥문굴을 머리에 관까지 쓴 선비들이 뒷짐을 지고 온갖 거드름을
피우며 지나가고 있는 꼴이 더욱 우스워 보였다.
"아니, 왜 웃는 거야?"
옆에서 걷고 있던 가정이 점잖게 물었다.
보옥은 뜨끔하여 웃음을 삼켰으나 곧이어 또 웃음이 푸 하고 터져
나왔다.
"아, 아닙니다. 이름짓기 놀이가 즐거워서요"
그렇게 얼른 대답하고는 걸음을 조금 빨리 하여 굴을 먼저 빠져나왔다.
"아"
보옥은 굴을 빠져나오는 순간, 저절로 감탄사를 발했다.
굴 바로 앞에는 아름다운 정원이 꿈결같이 펼쳐져 있었다.
갖가지 모양의 나무들과 기이한 꽃들이 어우러져 이 세상에서 한번도
맡아본 적이 없는 향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보옥은 심호흡을 하여 그 향기를 들이켰다.
보옥 자신도 한그루 싱싱한 나무로 변하는 것 같았다.
아니, 저기에 핀 큼직한 모란꽃 속으로 온몸이 녹아드는 것 같았다.
가정과 다른 문객들은 굴을 빠져나와 정원을 바라보면서도 보옥과
같은 느낌이 없는지 그저 한번 눈길을 주고는 지나칠 뿐이었다.
이름들을 지으러 나왔다는 사람들이 저렇게 완상력이 없어서야.
어린보옥이지만 그 어른들이 안타깝게 여겨지기만 하였다.
물론 그 정원 역시 방금 전의 석굴과 마찬가지로 이름을 얻지 못하였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