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업계에서도 심심찮게 M&A(기업 인수합병)가 이루어져 오고 있지만
기아자동차를 둘러싸고 국내 굴지의 대기업 그룹들이 벌이고 있는 M&A극만큼
드라마틱한 요건을 두루 갖춘 경우도 드문 것같다.

최근 LG그룹의 구본무회장이 "기아자동차를 짝사랑한다"고 고백, LG가
기아를 인수할 의사가 있음을 넌지시 밝힘으로써 한동안 잠잠하던 기아의
피인수설은 또다시 수면위로 떠올랐다.

LG 외에도 기아자동차 총발행주식의 6%를 보유하고 있는 삼성그룹은
오는97년 M&A관련법이 정비되면 인수전에 본격 나설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고 지난 6월 "견제용"으로 기아주식의 1%를 사들인 현대그룹은
LG와 삼성의 기아인수를 저지하기 위한 "백기사"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의 자동차사업 추진과정에서부터 피인수설에 시달려온 기아는 16일
이례적으로 사장이 기자회견을 통해 경영권확보 "3대전략"을 발표하는등
배수진을 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기아가 과연 경영권 방어능력을 갖추고 있으며 또 M&A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경영악화를 단시일에 치유할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애 대해 기아경영진은 80년대 말부터 "공격"에 대비해왔고 또 최근
경영상태도 호전되고 있어 아무런 문제도 없다고 주장하지만 기아를 둘러싼
루머는 쉽게 수그러들것 같지 않다.

국내에서 업종전문화와 주식분산이 가장 모범적으로 잘 돼있다고 하는
기업이 오너가 없다는 이유로 시도 때도 없이 피인수설에 시달린다는 것은
M&A 게임의 합법성 여부를 떠나 안쓰러운 일이 아닐수 없다.

동시에 전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M&A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해야할
필요성을 느끼게 된다.

대기업이 건실한 중견기업을 자금력으로 강제인수하는 것은 종래의 우리
기업윤리상 허용될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M&A는 기업환경의 급변추세와 관련, 자본주의 시장경제
체제에서는 얼마든지 용인되는 경영전략의 하나임에 틀림없다.

우리의 경우도 대표적인 경영권보호 수단인 주식의 대량소유 제한이
97년부터 폐지되기 때문에 본격적인 M&A시대의 개막이 예고된 상황이기도
하다.

다만 여기에는 대전제가 있다.

법이나 규정 규칙 또는 관행에 따라 정당하고 공정한 기준에서 게임이
치러져야 한다는 것이다.

공정한 룰이 없다면 M&A는 그야말로 약육강식의 정글논리에 지배돼 진정한
경쟁체질의 강화와는 거리가 멀어질 것이다.

궁극적으로 경영권보호는 그 기업자신에 달린 일이다.

무능한 경영자나 무분별한 가계상속은 장기적으로 경제발전에 저해요인이
되며 언제까지나 정부가 나서서 이들의 경영권을 보호해줄 수는
없는 일이다.

가장 훌륭한 자기방어는 경영을 잘해 회사의 체질을 튼튼히 하는 것이다.

경영권방어에 비상이 걸린 기업일수록 노사가 합심해 내실을 다지는 일이
중요하다.

허점을 보이지 않으면 쉽게 공격도 받지 않는 법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