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이 아들 보옥이 엉거주춤한 자세로 있는 것을 보고는,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야?"

하고 무뚝뚝하게 물었다.

보옥이 놀고 있었다고 말을 하지 못하고 우물우물 입속으로 뭐라
중얼거리자,

"따라와"

가정이 단호하게 명령을 하고는 문객들과 함께 걸어나갔다.

보옥은 아버지가 어디로 데려가서 혼을 낼 줄 알고 잔뜩 움츠린 자세로
그 사람들 뒤를 따라갔다.

대부인과 어머니 왕부인의 사랑 속에 자라난 보옥은 아버지 앞이라면
오금을 제대로 펴지 못하였고,아버지 가정도 보옥을 눈엣가시처럼 실제로
미워하였다.

보옥이 돌날 잔치 때 책이나 문방구를 집는 대신 여자들의 분합 같은
것을 손에 쥐고 흔들던 일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는 가정이었다.

그래서 보옥에 대해서는 큰 기대를 별로 하지 않고 있었다.

자기가 염려하는 대로 천하의 음탕한 잡놈이나 되지 않았으면 하고
수양서삼아 책 같은 것을 읽도록 할 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보옥을 가르쳐본 글방 선생들은 한결같이 보옥이 공부에 소질이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가정은 보옥이 태어날 때 입에 물고 온 구슬에 대해서도 아직도
여러 의심들을 가지고 있었다.

어머니 왕부인과 그녀의 해산을 도와준 대부인이 짜고 아이의 입에
구슬을 물려 매우 진귀한 아이가 태어난 것으로 연극을 꾸민 것이 아닌가
하고 말이다.

설사 아이가 정말 구슬을 물고 세상에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그 구슬은
길조라기 보다 어떤 흉조처럼 여겨지기만 하였다.

하지만 가정의 어머니 대부인이 버티고 있는 한 보옥의 구슬을 어떻게
함부로 처분할 수도 없었다.

그런데 보옥에게 한가지 봐줄 점이 있다면 어디서 베껴오는지는 모르지만
시구를 제법 지어댄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 보옥더러 따라오라고 한 것이었다.

가정의 일행이 별채로 들어가는 입구에 이르니 가진이 여러 집사들을
불러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문들을 닫도록 하여라. 우리는 문 바깥에서 살펴보고 난 다음에
다시 문을 열고 들어가겠다"

그러자 집사들이 별채 원내로 들어가는 거대한 정문을 닫았다.

가정을 비롯하여 같이 따라온 사람들이 조금 멀찌감치 서서 정문을
감상하듯이 올려다보았다.

보옥은 사람들이 왜 저러나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며 자기도 다시금 정문을
올려다 보았다.

다섯칸 크기로 지붕은 굵직한 원통형 기와가 미꾸라지 잔등처럼 밋밋하게
이어져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