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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칼럼] 마음의 제단 .. 박라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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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점이 부쩍 유행한다고 한다.

    어딘가 기대고 싶은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얘기다.

    신문에서는 "세기말 집단최면인가 정신병인가"라고 꼬집었고 한 정신과
    의사는 "불안이 만든 필요악"이라고 진단했다.

    특별한 종교가 없는 나는 미신과 아예 담을 쌓고 살아왔다.

    아무리 삶이 막연하고 눈앞에 닥친 일이 불안해도 철학관이나 점집을
    먼저 떠올리지는 않았다.

    그런데 몇년 전 나는 그 벽을 무너뜨린 적이 있다.

    신춘문예의 열병을 혹독하게 앓던 가을 어느날 이웃집 아주머니를 따라
    사주 관상을 봐주는 집엘 간 것이다.

    그랬더니 삼재란다.

    그것도 같이 사는 사람과 띠가 같아서 "될일도 안되는" 악삼재란다.

    어릴때부터 키워온 꿈이긴 하지만 부적의 힘을 빌려서까지 시인이 되기는
    싫었다.

    그렇지만 그 순간 나는 참 묘한 선택을 했다.

    마음속의 보이지 않는 작은 신 하나를 인정하고 말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귀신의 힘으로 내 운명이 바뀌면 귀신의 단골손님이
    될까 두려워 그 "작은 신"과 인연맺는 일을 애써 거부했다.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악삼재의 운명 따윈 잊고 오직 좋은 시 쓰기에만
    몰두했다.

    깊어가는 가을만큼 시를 사랑하는 마음도 깊어갔다.

    신과 인연맺기를 거부한 탓인지 몇가지 곤욕을 치렀지만 결국 그해 겨울
    시인이 되었다.

    요즘 나는 "마음의 제단" 하나를 가꾸고 있다.

    말하자면 크고 작은 신 모두를 인정한 셈이다.

    나의 제단, 즉 시의 제단엔 무수한 꿈이 기도문처럼 쌓인다.

    또한 수많은 고해성사가 안개처럼 서렸다가 해가 뜨면 눈물되어 고인다.

    내 부끄러운 눈물은 가슴속에 숨어있는 죄의 흔적이나 원망 분노 탐욕들을
    씻어내려주기도 한다.

    그리고 "꿈"이라는 방 하나를 더 얻었다.

    그 믿음이 결코 맹목적일 수 없는 경험 하나가 있기 때문이다.

    몇해전 조카가 대학시험에 실패했다.

    명문고의 수석졸업생이 재수생이 된 것이다.

    초조한 올케는 가을 내내 점집엘 다녔다.

    오들오들 떨면서 하루종일 순서를 기다린 끝에 만난 그 점쟁이는 올해는
    커녕 내년에도 합격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단다.

    액운이 끼었다는 것이다.

    그때 나는 말했다.

    내 조카와 그 점쟁이의 인연은 겨우 먼지 한 톨 정도도 안될텐데 어찌
    그런 사이에서 미래의 "운"을 점칠수 있겠느냐며 차라리 내가 기운을 모아
    꿈을 한 번 꾸는게 낫겠다고.

    물론 큰 의미를 두고 한 말이 아니라 순전히 그런 점집 따위는 이제
    다니지 말라는 위로의 뜻에서 나온 말이었다.

    그런데 그날밤 정말 꿈을 꾸었다.

    연년생인 두 조카는 같은 해 시험을 치르게 됐는데 거북이 두마리가 나와
    함께 모래밭에서 놀다가 거북이는 바다로 가고 나는 뭍으로 나왔다.

    그 꿈 이야기를 우스갯소리로 들려줬더니 둘다 합격할 꿈이라 했다.

    우연은 진짜가 되었고 내 꿈은 그때부터 영험(?)해지기 시작했다.

    믿음이란 무엇인가.

    모든 신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

    희망의 거처를 향하는 마음의 행로는 자기 혼자만의 세계이다.

    "꿈의 방"은 남이 쉽게 엿볼수 없는 곳에 존재해야 신성한 법.물론 마음의
    제단을 정성껏 가꾼다고 해서 모든 일이 자기가 원하는대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사고로 보면 커다란 웃음거리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곳에는 기계적으로 잴수없는 힘이 있다.

    원하는 일이 좌절됐을때 혼자 돌아가서 쉬다 오는 방,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를 흘려보내주는 강, 바램의 씨앗을 다시 뿌리고 기다리는 방.

    그런 대상이 될수 있다면 각자가 믿고자 하는 신은 없는 것보다 있는 것이
    낫다는 생각이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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