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산업현장에 불고있는 노사화합의 바람은 국내노사관계의 기존 틀을
흔드는 일대 전환기를 예고하고있다.

노사관계의 룰은 물론 노사관계를 바라보는 인식도 급격하게 변하고있다.

근로자들은 과다한 명분보다는 내실을 추구하고 있고 사용자측은 근로자
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경영혁신을 시도하고있다.

우리나라가 노사협력을 선언해야 할 절박한 상황에 처해있다는 인식은
이같은 시각변화의 배경이 되고있다.

지난 87년이후 되풀이돼온 파업과 해고의 악순환은 결국 기업존립을
위태롭게한다는 사실을 많은 사업장의 경험으로 알수있다.

뿐만 아니라 올해 세계무역기구(WTO)출범은 국가간 또는 지역간 경쟁양상
을 기업간 경제전쟁양상으로 바꿔놓고 있다.

날로 심화되는 대외경쟁의 격화는 기업의 존립과 근로자의 생존권을
위협하고있다.

사용자가 경영여건을 이유로 "일시 해고"를 단행할수있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는 자의적인 해고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기업의 생산성저하와 경영수지악화는 기업공동체의 파멸로 직결
된다.

최근의 노사협력선언바람은 이같은 외부적인 환경변화로 현장의 위기의식
이 커지고있는데서 비롯된 것이라 할수있다.

현장 근로자들의 정서도 탈이념의 세계적인 추세와 맞물려 실리지향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극한대결보다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노사문제의 해결이 근로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과거경험도 한몫 거들고있다.

국내굴지의 대기업 모계열사의 경우 지난해 장기분규로 막대한 매출손실이
발생, 금년초에 성과급배분금액을 예년에 비해 100%이상 깎아야했다.

반면 노조가 실리위주의 경제조합주의를 추구했던 다른 계열사의 경우
지난해 임금협상에서 회사측이 노조의 요구안보다 더많이 지급해주는
"파격"을 연출했다.

실제로 최근 노사화합선언업체의 노조들은 두드러진 실리지향적 태도를
취하고있다.

이들 노조들은 "기업이 잘되어야 근로자가 잘산다" "회사의 발전이 곧
나의 발전이다"등 상당히 전향적인 슬로건을 내세우고있다.

기업 측이 바라고있는 생산성향상운동에 흔쾌히 동의함은 물론 "세계
초일류기업을 향한 노사단결"에도 일치된 입장을 나타내고있다.

이는 책임있는 경제주체로서의 자각이 근로자들의 내면에 자리잡기
시작하고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노사화합선언업체의 노조들은 또 임금등 눈앞의 단기적인 이익보다는
근로복지증진등 장기적인 이익을 추구하고있다.

경제발전과 함께 지속적인 임금소득 증대는 여가와 문화생활에 대한 강한
욕구를 가져다주었다.

근로자들도 이제는 레저활동이나 휴식을 즐기고 싶어한다.

많은 기업들은 "좋은 기업, 좋은 직장" "다양한 기업문화활동" "노동의
인간화"등의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사용자측도 가능한한 노조의 요구는 들어주면서 노사관계의 안정을 통해
효율적인 경영전략을 수립하는 것이 더 낫다는 입장이다.

모처럼 찾아온 호기를 활용,다소의 부담을 안고서라도 협력적 관계의
물꼬를 터놓겠다는 전략이다.

일부기업에서 시도하고있는 신인사제도와 생산직과 사무직의 직무통폐합,
시급제폐지등도 이같은 전략을 배경으로 하고있다.

어쨌든 한국의 노사관계는 지난 87년 민주화선언이후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있다.

외부적으로는 공산권의 몰락으로 이데올로기적논쟁이 무의미해지면서
경쟁력만이 "지고의 가치"로 강조되고 있으며 내부적으로는 경제사회 발전
과 함께 사회각부문의 역할에 대한 의식이 성숙되고있다.

요즘 개별사업장의 노조위원장들은 "협력"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주저하지않는다.

그만큼 시대가 달라졌다.

이것은 비단 노사관계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를 위해서도 상당히 좋은
조짐이다.

< 조일훈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