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은 국민경제의 뿌리이다.

국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고 생필품을 공급한다.

다양한 부품및 소재를 생산, 완제품업체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해
준다.

중소기업이 튼튼하지 못하면 국민경제가 흔들릴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국민소득 1만달러시대에도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아직 튼튼한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한결같은 평가다.

여전히 자금난에 허덕이는가 하면 부도가 줄을 잇는다.

지난해 부도를 낸 중소기업은 광림기계 등 간판급 중소기업을 포함, 1만
1,255개사에 이른다.

올들어서도 상반기중에만 6,559개사가 부도를 당해 연말까지 적어도 1만
2,000개사를 넘을 전망이다.

이러한 시점에서 한국경제신문은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와 공동으로 과연
중소기업의 근본적인 애로사항은 무엇이며 어떤 해결방안이 있는지를 조사해
봤다.

이 조사는 상시종업원 5인이상 300인 미만의 중소제조업체 가운데 1,157개
표본업체를 대상으로 실시했다.

조사방법은 서울소재협동조합및 지방기협지회를 통해 설문조사했다.

이번 조사는 현재 중소기업이 경영상 가장 애로를 겪고 있는 사항이 무엇
인지를 파악하는데 초점을 맞추었다.

경영애로부문은 중소기업의 4대 애로사항인 자금난 판매부진 인력난 생산
기술난등으로 나누었다.

이들 4개 부문중 역시 가장 큰 애로사항은 자금난이었다.

자금난이 가장 큰 애로사항이라고 응답한 중소기업은 전체의 36.9%였다.

다음은 판매부진이 28.6%, 생산및 기술애로 17.6%, 인력난이 16.9%를 차지
했다.

중소기업의 해묵은 애로사항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반영했다.

그러나 구체적인 항목을 살펴보면 예상외로 애로사항의 내용이 크게 달라진
것으로 분석됐다.

먼저 자금난의 경우 지금까지는 담보부족으로 인한 은행이용곤란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이번 조사에서는 자금난 36.9%중 제조경비상승으로 인한 자금부족이
18.9%로 가장 많고 판매대금회수부진이 14.1%를 차지했다.

반면 금융기관이용곤란은 3.9%에 불과했다.

이는 중소기업들이 계속 자금난에 부닥치고 있으나 자금난을 겪는 사유는
상당히 변하고 있음을 나타냈다.

제조경비상승으로 인한 일시적자금난에 시달리는 기업이 늘어나고 있는
것은 중소제조업체들이 소요로 하는 핵심부품및 소재의 가격이 급상승하고
있는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업계는 풀이하고 있다.

제지업계가 펄프값 인상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인쇄회로기판업체들은
페놀원판가격이 올라 걱정이 태산이다.

이밖에 가구 인쇄 전선 스테인리스강관 판유리가공등업종이 올들어 적어도
30%이상의 제조경비상승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는 지나친 공해물질배출규제 고가무공해소재사용 포장비용증가 준조세
등도 제조경비를 상승시켜 일시적 자금난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금난을 겪는 두번째 사유는 제품을 판매하거나 납품하고 돈을 제때 받지
못해 일어나는 것으로 판명됐다.

현재 중소기업이 제품을 공급해주고 현금을 받는 것은 전체의 34.9%에
지나지 않았다.

절반을 훨씬 넘는 65.1%는 장기어음을 받고 있다.

장기어음을 받은 중소기업은 돈을 회전시키지 못해 결정적인 치명타를 입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하도급거래공정법등 중소기업관계법에 분명히 60일이상의
장기어음은 발행하지 못하게 되어 있으나 전체 어음발행의 87.2%가 60일
이상 어음을 발행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관계법규정을 위반하는 대기업들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하도급분쟁도 자주 일어난다.

올들어 혜성기계와 세일기계가 분쟁신고를 한 것을 비롯 우창선박과 강남,
삼호전자와 후지카대원전기, 선우산업과 대성등 16건의 하도급거래분쟁이
발생했다.

그러나 이같은 분쟁과 장기어음발행의 증가에도 불구, 중소업체들은 법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들어 자금난에 못이겨 폐업을 한 회사는 순동선업체인 현대금속(고양)
삼광콘크리트(원주) 아성공업사(달성) 신아물산(대구) 준영피혁(고양)
금강제관(김포) 대광직물(진주)등이다.

부족운전자금을 조달하는 방법에서는 은행융자가 절반을 훨씬 넘는 64.9%로
큰 비중을 차지했다.

그러나 제2금융권과 직접금융인 회사채 주식을 통한 자금조달비중은 매우
낮았다.

이 탓인지 사채이용비중은 충격적으로 높았다.

운전자금을 사채로 조달하는 비중은 21.9%나 됐다.

실명제이후 일반적으로 중소기업의 사채이용은 크게 줄어들었을 것으로
기대해 왔으나 이번 조사에서 사채이용이 여전하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두번째 애로사항인 판매부진은 경기하락으로 인한 내수부진이 가장 큰
어려움이 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내수시장협소 <>수입물량과잉 <>소비패턴의 변화 <>대기업의
시장잠식 <>수주조건의 악화 <>유통망확보의 어려움등이 복합적으로 내수
시장에서 판매부진을 안겨주고 있다.

수출부진에 있어서는 원가상승으로 인한 것이 대부분을 차지했으며 국내
업체간 과당경쟁, 해외시장정보부족, 중국등 개도국의 시장침투, 선진국수입
제한, 품질미흡등이 요인으로 작용했다.

생산및 기술애로사항은 뜻밖에 원료를 제대로 구하지 못하는 것이 큰
애로사항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음식료품업종을 비롯 종이제품 1차금속 인쇄등 업종에서 원자재구득난
을 호소했다.

이에 비해 그동안 큰 어려움으로 간주됐던 생산설비노후화는 낮은 비중을
차지했다.

이는 중소기업구조개선사업및 자동화자금지원등이 효과를 거두고 있는데
따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공장입지난과 기술개발난도 단기적인 경영난에는 심각하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됐다.

인력난은 10만명의 해외인력유입에도 불구, 종업원을 구하지 못해 휴업을
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으며 계속되는 인건비 상승도 큰 경영압박요인이
되고 있다.

이번의 조사결과를 종합할 때 중소기업의 자금난해소를 위해서는 중소
기업용 금융상품 확대나 은행의 중소기업의무대출비율제고등 획일적인 금융
지원 강화보다는 기업 스스로 자금회전율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
줘야 할것으로 요망되고 있다.

<이치구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