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와 말들이 얼마간 달리니 저 앞쪽에 장례 행렬이 멈춰 서 있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무슨 일인가 하고 더 나아가 보니, 철함사의 중들이 진가경의 영구를
맞이하려고 법고와 징, 당번(절간의 깃발), 일산 같은 것들을 먼데까지
가지고 나와 기다리고 있다가 장례 행렬과 만난 것이었다.

가진을 비롯한 가씨 가문의 어른들이 철함사의 중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철함사 주지 색공의 안내로 장례 행렬은 철함사로 들어가 몇가지
불사 의식을 치른후 진가경의 영구를 내전 옆방에 안치하였다.

진가경의 양녀가 된 보주는 상례(상례)를 따라 아예 그곳에다
잠자리를 차려놓고 영구를 지키기로 하였다.

보주가 슬피 곡하는 소리가 절간 가득히 울려퍼졌다.

가진은 절간 바깥 마당에서 장례에 참석한 친척과 손님들을 접대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어떤 사람은 절에서 차린 밥을 먹고 돌아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그냥 돌아가기도 하였는데, 공.후.백.자.남의 작위 순을 따라 차례로
돌아갔다.

그리하여 오후 세시가 못되어 바깥 마당의 손님들은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다 돌아갔다.

한편 절간 안쪽에서는 희봉이 부인네들을 대접하느라 바삐 왔다갔다
하였다.

부인네들도 작위 순을 따라 한 사람씩 돌아가 오후 두시쯤 되어서는
몇몇 친척들만 남게 되었다.

개중에서도 진가경과 촌수가 더 가까운 녕국부 근친들은 삼일동안
치러지는 안령도량재에 참석한 후에 돌아가야만 하였다.

형부인과 왕부인은 녕국부 사람들이 아니라 영국부 사람들이었으므로
그냥 돌아가도 되었지만, 희봉은 녕국부 살림을 맡아온 터라 그 근친들과
함께 있어야 했다.

왕부인이 돌아갈 채비를 하며 아들 보옥을 불렀다.

그러나 보옥은 오랜만에 야외로 나왔는데 어머니를 따라 금방 돌아가고
싶지가 않았다.

더군다나 철함사 근방에 여승들만 기거하는 암자들이 있다고 하지
않는가.

"저는 형수님과 같이 있다가 갈게요"

보옥이 고집을 부리자 왕부인은 보옥을 희봉에게 부탁하고는 수레에
올랐다.

진가경의 양아버지 진업은 원래 삼일재에 참석하고 가기로 했으나
워낙 몸이 안좋아 대신 아들 진종이 참석하도록 하고는 일찍 돌아갔다.

진종은 진가경의 배다른 동생인 셈이었으나 누나의 죽음에 대해서
그리 슬퍼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물론 처음에는 슬퍼하였겠지만 49일이나 지난 지금에 와서는 덤덤한
심정이 되어 있었다.

무엇보다 진종은 보옥과 함께 철함사에 남아 있게 된 것이 여간
즐겁지가 않았다.

벌써부터 좋은 일이 기다라고 있는 것처럼 마음이 설레고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5년 9월 7일자).